경영진단_088 타성이라는 익숙함이 주는 가장 큰 피해자는 당사자

여러분께 어떤 회사에서 입사 제의를 해 왔다고 상상해 봅니다.

예상되는 손실 이상의 분명한 이득이 있다면 당신은 새로운 직장의 제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분석이고 합당한 생각이고 일반적입니다. 이직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보면 현재의 직장보다 보수나 책임 정도 등 훨씬 나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직장 위치나 복지 제도 등 다른 조건 면에서 볼 때 미미한 불편에 대해서 부정적인 내용이 확장되는 일도 있습니다.

이익보다 손실에 더욱 신경을 쓰는 심리적 성향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새로운 직장을 거절하고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순수한 이익의 기회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얻게 되는 이익보다 잃게 되는 손실이 더 크게 느껴지면서, 현상을 유지하려는 편향성이 현명한 판단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타성이라고 부릅니다. 타성은 잠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젖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달에 지각을 많이 한 직원과 전혀 지각하지 않은 직원이 다가오는 새달에 지각 가능성을 점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지난달 지각을 많이 한 직원이 더 많이 지각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 지각을 많이 한 직원이 가진 늦게 출근하는 타성이 미래에도 그렇게 작용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타성에 대한 관성적인 사고 때문에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각을 많이 한 직원이 주거하는 지역의 대중교통이 열악했던 것이 원인이었고, 자구책으로 출퇴근을 위한 새 자동차를 사서 다음 달부터는 지각 출근에 문제가 없어지고, 전혀 지각하지 않았던 직원의 경우에는 먼저 지각을 많이 한 직원의 주거지역으로 이사를 해서 열악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출퇴근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다면 여러분은 다음 달의 출퇴근을 어떻게 예상합니까

미국의 챌린저 우주왕복선 참사의 원인이 우주선 발사 전일 밤에 열린 회의에서 NASA와 외주업체인 모턴티오콜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이 가진 데이터의 범위를 벗어나는 의미를 올바르게 판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NASA 측의 책임자 래리 멀로이의 과학적인 분석에 근거도 없이 결정 권한에 몰입해서 우주선 발사 결정을 미룰 수 없다고 주장했었습니다. 발사에 직접 관련된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주장은 그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주입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논의는 격렬하게 하지만 의사결정에 대해서 뒷말하지 말자는 비공식적인 문화가 기저에 확고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의사결정의 프레임은 안전이 확실히 확보될 때까지 우주선을 발사하지 말자는 합당한 선택 기준과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사 결정은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올바르지 않은 의사결정을 한 사람 중의 하나로 규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합리적인 근거로 주장을 굽히지 못했던 엔지니어는 계속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하고 싶다는 타성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강력한 요구는 부패한 제도적 장치가 계속 존재하는 데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의 타성에 젖은 시스템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사람들이 정작 이러한 시스템을 앞서서 옹호하는 발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는 원래 가스가 누출되는 곳입니다. 여러 번 고쳤는데도 이렇게 계속 누출이 되네요”라고 담당 공무원의 지적을 피합니다. 결국, 가스 폭발로 사상의 피해를 보게 되는 사람은 담당 공무원이 아닌 현장에서 그 지적을 타성으로 방어한 작업자일 것입니다.

흡연자들은 담배 업계의 전략에 항의하는데 덜 적극적이고, 다른 업체들의 부패한 연간 보고서로 인해 피해를 본 기업들은 침묵을 지키고,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이 에너지 빈곤의 문제를 자신의 우선순위에서 제외하곤 합니다.

관행이라는 기존의 타성에 젖은 시스템을 정당화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해로운 현재 상황을 지속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타성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 유지 편향은 정책 변화에 반대한 특정 그룹의 주장에 결정적이고 체계적인 반대 논리를 구축하게 됩니다. 이러한 타성적 시스템은 합리적이라는 핑계로 의혹을 부추기고,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하고 합당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받아들일 수 없고, 사실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갖게 합니다.

최근 10년간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으므로 이번 주 일기예보가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외부에 보관 중인 이 약품을 이동 보관할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누군가 의사 결정을 앞두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과정이 있게 되면 타성적 시스템은 아주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타성이라는 익숙함이 주는 피해자는 당사자라는 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제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오늘 일어나면서 나뿐만 아니라 더 많은 다른 이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변화하라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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