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단_105 글로벌 도시의 원형은 ‘베네치아’

나폴레옹이 등장하기까지 수 세기 동안 바와 세상을 지배했던 독립적인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의 동쪽 해안에 해당하는 아드리아 해안에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도시국가의 원형으로, 섬나라입니다. 섬의 집합체입니다. 기술적 차원에서는 선진화된 해군력을 보유했고, 조선 기술 역시 시대를 많이 앞서 있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국제 무역의 중심으로 성장시킨 비즈니스에 친화적이었습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궁전이라고 불렀던 곳은 사실 운하에 있는 창고 건물로, 무역선은 그 바로 앞에 정박하고 물건을 옮겼습니다. 궁전은 2층 구조로, 상인들은 주로 위층에 살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귀족으로 신분을 높여가고 싶었습니다. 높은 사회적 지위는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었고, 이를 이용해 제품과 서비스에 높은 프리미엄을 붙였습니다.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파견단을 구성해 베네치아의 총독을 찾아가서는 신분 상승을 요구했습니다. 총독은 베니스 상인들의 지위를 승격시켜서 얻게 되는 경제적 이득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상인에게 백작의 지위를 하사했습니다. 물론 유럽의 전통적인 신분제와는 달랐지만, 베니스의 상인은 이를 통해 국제 비즈니스에서 크나큰 성과를 이어갔습니다.

총독은 모든 도매 창고의 이름을 팔라초(Palazzo, 정부를 보는 관청이나 귀족의 저택을 이르는 말)로 함께 바꾸어주었습니다. 이 또한 하찮았던 장소의 격상을 통해 집하된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비즈니스 효과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베네치아는 지중해 동부에서 유럽으로 운반되는 상품의 집산지가 되었습니다.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베니스는 원래 습지대였습니다. 6세기경 훈족의 습격을 피해 온 이탈리아 본토 사람들이 간척을 시작하여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서기 697년 초대 총독이 선출되어 독자적인 공화제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11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의 기지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중세의 전란으로 사라진 예술과 공예를 그곳 공방에서 소생시키는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베네치아의 유리, 양복감, 비단제품, 금, 철, 청동 등의 가공기술은 실로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현재는 그 기술이 예술로 승화되어 많은 여전히 고급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이라는 공화국으로 활동하던 베네치아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의 분쟁을 개신교에 유리하게 중재하여 1606년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하면서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797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침략을 받아 1805년 나폴레옹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에 귀속되었습니다. 1815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1866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이후 이탈리아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섬을 점령했었습니다.

현재의 베네치아는 무역의 도시에서 관광지로 그 지위를 상실하면서 기후 온난화에 따라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고, 관광객이 남긴 쓰레기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로벌 도시의 역사적 지위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그 글로벌 도시의 지위를 싱가포르로 옮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베네치아를 흠모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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