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치사하게 은퇴하고 싶다.’에 차마 담지 못했던 글의 일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고대의 귀중한 문서들을 기록한 것은 귀족이나 학자들이 아니라, 비바람 치는 초가 한 칸에서 언 손을 녹여가며 글을 쓰는 필사본 채식사들이었다. 중세의 전장에서 죽어간 이들은 기사나 군인들이 아니라 그들을 뒤따르던 종자와 하인들이었고, 민중의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여왕의 목을 자르는 일은 술 취한 망나니가 담당했고, 아프거나 다친 사람들은 마법사와 이발사들이 치료했다. 오늘날의 철도와 도로를 건설한 건 국가나 부르주아들이 아니라 집시처럼 떠돌던 일단의 부랑자들이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고대든 중세든 현대든 문명은 절대로 유지될 수 없었고, 또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맨 처음 문명을 건설하고, 문명의 번성기에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천한 일로 문명의 밑바닥을 지탱한 것은, 이름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가장 천하고 가난한 자들이었다. 이들의 피땀 위에 건설되고 유지된 문명은, 그러나 이들을 문명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추방시켰다.

문명이 뒤집어쓴 위선의 가면 너머,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참혹하고 기이한 3류 직업의 수난사가 있다. 거기엔 겸손과 절재를 올바로 배우지 못한 우리 문명의 또 다른 자화상이 놓여있다.

  중세시대 기사도 시대에 갑옷담당종자는 기사의 시종이었다. 이 어린 소년은 기사계급에서 가장 낮은 수습기사로서 무보수로 일했다. 그렇다면 13~15세기에 기사를 섬기는 소년들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한마디로 똥 같은, 똥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정말이다.

전투는 실제로 몇 시간이 지나도 쉽게 끝나지 않았다. 기사들은 용변이 급해도 화장실을 다녀올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갑옷에 바지 지퍼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아무리 용변이 마렵다 해도 싸움이 끝나기 전에 갑옷 속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갑옷 바깥에서는 말과 사람의 피와 진흙이 튀겼고 갑옷 안은 말할 것도 없이 더욱 끔찍했다. 게다가 중세에는 대부분의 전투를 여름에 치렀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질 판에 한창 전투가 벌어졌을 땐 얼마나 많은 땀이 흘렀을지 상상해 보라. 그나마 상체 쪽은 나은 편이었다. 하체 쪽 사정은 훨씬 나빴다. 특히 기사가 겁에 질릴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갑옷담당종자의 직업에서 최악의 일거리는 전장에서 돌아온 주인의 갑옷에서 이처럼 안팎으로 묻은 오물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비참한 하루를 보내고 막 집으로 돌아와 혹사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면, 부디 당신이 역사상 그보다 끔찍한 직업을 가진 무수한 사람들 중에 끼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이 정도’ 충성했으면 당신은 평생직장을 얻을 만큼 했다고 생각되는가? 아니다. 그건 그저 누구나가 하는 보통 수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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