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가 몸 바쳐서 죽은 게 그렇게도 신나는 일인가요?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1594년 유몽인은 삼도순안어사가 되어 하삼도의 피해상황을 살피게 되는데, 진주에 머물면서 진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단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논개’의 이야기를 듣고, 신분이 미천하여 정사에 실리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였습니다. ‘논개’가 관기라는 이유만으로 광해군 9년 편찬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순국 사실이 기록되지 않자, 이를 안타까워하며 논개의 순국 기록을 1621년 자신이 편찬한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남기게 됩니다.

그 내용를 보면, 권1 인륜편(人倫篇) 효열(孝烈)에 ‘논개’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논개의 이야기는 처첩, 노비, 창기에서 다뤄지지 않고 인륜편에 실려 있습니다.

‘어우야담’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논개’는 진주의 관기였습니다. 계사년에 창의사 김천일이 진주성에 들어가 왜적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군사들은 패배하였고 백성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논개는 몸단장을 곱게 하고 촉석루 아래 가파른 바위 위에 서 있었는데 바위 아래는 깊은 강물이었습니다. 왜적들이 이를 바라보고 침을 삼켰지만 감히 접근하지 못했는데 오직 왜장 하나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습니다. 논개는 미소를 띠고 이를 맞이하니 왜장이 그녀를 꾀어내려 하였는데 논개는 드디어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함께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어우야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논개가 관기였다는 점과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는 기록만 나옵니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1987년 해주 최씨 문중에서 발행한 ‘의일휴당실기(日休堂實記)’에 논개 관련 부분이 언급되는데, 최경회를 의미하는 경상우병사증좌찬성최공시장(慶尙右兵使贈左贊成崔公諡狀)에 논개 관련 부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공의 부실(副室)이 공이 죽던 날 좋은 옷을 입고 강가 바위에서 거닐다가 적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죽어 지금까지 사람들은 의암이라고 부른다 (且其副室 公死之日 盛服婆娑於江中巖石 誘賊長因而俱墜死 至今人稱義巖)

이것을 근거로 논개가 최경회의 부실(副室)로 알려진 것입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그는 유교사회에서 첩이 되었다는 점, 혹은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점, 그의 숙부가 가산을 탕진한 점 등으로 문중에서 기피인물로 외면당하다가 1970년대에 방계 후손들이 그의 묘소를 방문하면서 재평가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1980년대에 가요 ‘논개’를 가수 이동기가 불렀고, 이 노래는 당시 많은 인기를 모았습니다.

“꽃입술 입에 물고 바람으로 달려가 작은 손 고이 접어 기도하며 울었네… 몸 바쳐서 몸 바쳐서 떠내려 간 그 푸른 물결 위에…”

가수 이동기가 부른 ‘논개’라는 노래는 지금도 대학가 응원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주 신나가 부르는 곡입니다. “몸 바쳐서 …” 그것도 경쾌하고 신나게 목청이 터져라고 부른다. ‘논개’가 몸 바쳐서 죽은게 그렇게도 신나는 일인가요?

이동기의 ‘논개’는 괜찮고 ‘알리’는 문제있다요? 젊고 가창력있는 가수 ‘알리’가 자신의 아픔을 그린 슬픈 노래를 불렀다가 항상 자기 자신도 모르는 ‘대중’과 만나면서 큰 봉변을 겪고 말았습니다. 대중은 항상 무지하고 몽매하다는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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