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당신의 가치를 증명하라-42]’코니’ 아줌마의 감기와 ‘데이빗’이 만든 저녁

암트랙이 사고를 쳤다.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오마하에 도착한 것이다. 새벽 5시에 오마하에 도착할 것을 예상했는데, 등교시간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압박이 왔다.

열차가 오마하 역에 도착하자마자, 주차장에 세워놓은 꽁꽁 얼어붙은 차에 동기를 태우고 일일이 집에 내려놓고 홈스테이에 다다른 시간은 오전 7시00분. 열차에서 얼은 몸을 샤워로 달래고 옷만 겨우 갈아입고 등굣길에 나섰다. 그래도 무사히 오마하에 도착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졸며 겨우 하루 일과를 보내고 저녁식사를 위해 홈스테이에 들렀다. 오마하 시내는 내가 도착한 그 날부터 딱 40일 만에 아스팔트 색을 내보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도로가 흰색인 줄 알았는데, 짙은 회색빛의 길을 마주하니 정신이 멍해질 정도다. 이렇게 검은 땅을 40일간 못 보고 지냈다는 게 말이 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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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눈이 녹아 진회색을 발하는 아스팔트, 신기할 정도여서 저녁식사 하러 가는 길에 사진을 찍다.]

오마하의 석양이 오늘따라 참으로 아름답다.

집에 도착하니 주부가 없다는 것, 그래서 냉기가 돈다는 사실을 몸 전체로 느낄 정도였다. ‘코니’ 아줌마의 감기가 멈추질 않은 모양이다. 내가 ‘덴버’로 떠날 때 기침이 심하다 싶었는데, 그래서 ‘용각산’을 먹어보라고 권했더니, 기겁을 해서 설명하느냐고 애를 썼지만, 결국 ‘코니’ 아줌마에게 드시게 하는 일은 실패로 돌아갔었는데 말이다. 오늘은 감기가 심해서 출근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데이빗’ 아저씨가 오늘은 내가 주방책임자라고 으스대며 멋진 요리를 선보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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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 봉지의 좌상단에 라면이라는 한글이 표기되어 있다.]

내가 돕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혼자서 준비하겠다면서 내놓은 음식재료 중 하나가 ‘N사의 S라면’ 내가 오마하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되어서 사다놓은 것인데, 처음으로 식재료 반열에 오른 것이다. 갑자기 군침이 돌면서 식욕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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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와 양파를 볶는다.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

토마토와 양파를 잘라서 볶는 것을 보니 필시 햄버거 속재료를 만드는 모양이다. 햄버거와 라면? 상상이 가질 않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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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옆에서는 라면이 진죽이 되도록 끓이고 있다. 이렇게 끓이면 맛이 없다고 내가 돕겠다고 다가섰더니, 라면 봉지에 있는 조리법 그대로 요리하고 있다면서 나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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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햄버거의 속 재료 중에 하나인 스테이크가 준비되고 저녁 준비의 완성 속도가 높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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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안에 내용물이 곱게 자리 잡은 모양으로 거의 완성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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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표 저녁 식사 준비 완료]

앞쪽에 보이는 것은 감자칩. 라면이 변신해서 수프가 되었다. 퉁퉁 불은 매운 라면이 ‘데이빗’ 아저씨에게는 정말 맛있는 저녁 메뉴가 된 셈이다.

내가 ‘라면의 진수를 보여주겠다.’ 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오히려 ‘데이빗’ 아저씨는 오마하에서 라면을 제일 잘 끓이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고 일축시키고 말았다. 더는 논쟁거리가 되지 못했던 것은 내가 그 맛없이 끓인 라면을 순식간에 먹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덴버’에서 사온 선물을 전달하겠다고, ‘데이빗’을 통해서 애기를 전달했지만, ‘코니’ 아줌마는 감기 옮는다고 끝내 얼굴을 비추지 않으셨다. 이상하게도 라면을 먹으니 피로가 다 가셔버린 것 같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되는 순간이다.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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