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상 수상작에 드리워진 의혹
인공지능(AI)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며, 마침내 소설까지 써 내려가는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기술의 진보를 환영하는 목소리 못지않게, 예술의 본령(本領)이 흔들린다는 우려 또한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 게재된 스티븐 부시(Stephen Bush) 칼럼니스트의 글은 이 논쟁의 무게중심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습니다. 기계가 무엇을 쓰느냐보다, 인간이 무엇을 좋다고 판단하느냐가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문학상이라는 인간의 영역에 균열이 가다
사건의 발단은 올해 커먼웰스 단편소설상(Commonwealth Short Story Prize)의 카리브해 지역 수상작으로 선정된 단편 「숲속의 뱀(The Serpent in the Grove)」입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으로 알려진 작가 자밀 나지르(Jameel Nazir)의 작품인데, 발표 직후 일부 독자들 사이에서 AI가 작성한 글의 특유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다섯 편의 지역 수상작 전문을 게재하는 문학 잡지 그란타(Granta)는 이 작품을 미국 앤트로픽(Anthropic)이 개발한 생성형 AI 클로드(Claude)에게 의뢰하여 자체 분석을 진행하였고,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나오기 어려운 수준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회의적 결론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작가 본인은 AI 사용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며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얻은 영감으로 쓴 글이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부시 칼럼니스트는 이 작품을 직접 읽고 어색한 비유와 과장된 수식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작품의 완성도 자체에 의문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작가나 AI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던진 핵심 질문은 분명하였습니다. 이 작품이 정말 인간에 의해 쓰였는가가 아니라, 이 작품이 정말 인간에 의해 심사되었는가라는 것입니다.
판단력을 기계에 위임하는 시대의 그림자
부시 칼럼니스트의 통찰은 우리 시대의 깊은 곳을 찌릅니다. AI가 인간을 모방하여 글을 짓는 일은 이미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진정한 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판단을 기계에게 위임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란타가 작품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AI에게 다시 AI 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결론을 도출하였다는 점은 상징적입니다. 인간 편집자가 자신의 안목과 직관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고, 기계가 내려 준 진단서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판단을 외주화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부시는 컴퓨터 앞에 앉아 지시문을 거듭 수정해 가며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예술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그 결과물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일만큼은 결코 다른 누구에게도, 더욱이 기계에게는 넘겨서는 안 될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독서의 본질은 글자를 따라 읽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마주하며 스스로의 상상력과 판단력을 작동시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시니어 세대가 지켜 온 ‘스스로 판단하는 힘’
이 논의는 시니어 독자께도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검색은 챗봇이, 글쓰기는 AI 도구가, 의사결정은 알고리즘이 대신해 주고 있습니다. 편리함이 늘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는 스스로 묻고 따지고 결론을 내리는 능력을 조용히 내려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오랜 세월 삶의 풍랑을 헤쳐 온 시니어 세대는 누구보다도 스스로 판단하는 일의 무게를 잘 아는 분들이십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옳고 그름을 가려 후세에 물려줄 가치를 지켜 온 그 모든 과정이 곧 인간 판단력의 축적이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옳으며 무엇을 후대에 남길 것인지에 대한 최종 판정은 결국 사람의 몫으로 남습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 판단은 사람의 것
AI는 우리의 손과 발이 미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 도구의 본래 목적은 인간이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 주고, 우리의 안목을 더 예리하게 다듬도록 돕는 데 있어야 합니다. 판단의 권한까지 기계에 양도하여 그 능력이 녹슬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술 발전이 가져올 가장 큰 손실일 것입니다.
소설 한 편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무엇이 좋은 글인지, 무엇이 옳은 길인지,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인간됨의 핵심입니다. 도구의 편리함은 충분히 누리되, 사람으로서의 판단력만큼은 끝까지 우리 손에 쥐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살아온 삶의 결이야말로 그 판단력의 가장 든든한 토대임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새겨 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