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098] 일자리 뺏기와 일자리 열어 놓기

“미지근한 물 한 잔만 주세요.” 이 말을 들은 식당 종업원은 물 줄 생각 없이 생글생글 웃기만 하더라고요.

식당에 들어서면서 미지근한 물을 찾았을 때, 종업원이 그냥 웃고만 있으면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약사가 속탈이 났을 때는 찬물로 약을 먹지 말라는 얘기로 약 먹을 미지근한 물을 찾았을 뿐인데… 종업원이 ‘미지근한 물’이 어떤 물인지를 모른다는 것을 잠시 뒤에 알고, 결국 찬물과 더운물을 달라고 해서는 섞어 마셨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구내식당이 없는 관계로, 점심때가 되면 회사 주변의 식당을 전전합니다. 오늘은 비가 오고 꾸물꾸물하니 대구탕 집으로, 날씨가 화창하니 자장면집으로 매일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헤맨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유독 역삼동 주변의 식당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말조차 어색한 식당 종업원들을 만나게 됩니다. 미지근한 물을 모르는 식당 종업원. 물론 이 정도가 불편해서 외국인 노동자 운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젠 허드렛일을 하는 일자리에 한국인이 고용이 급속히 감소하는 추세에 놓여 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참에 식당주인에게 “‘한국인 종업원’은 안 뽑나요?”라고 여쭈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국사람을 구할 수 없기에 조선족을 고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하더군요.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률은 점점 높아간다고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을 구할 수 없어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없다고 하고 하는 현실을 보면서 세계화의 발목에 잡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를 외국에 팔려면, 쇠고기 수입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경제의 세계화 논리라고 본다면, 노동시장에서의 세계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식당에서 조선족을 고용할 수 없다면 비싼 임금을 주더라도 한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겠지요. 대신 서비스는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인을 고용하면 결국 음식값이 올라가는 문제가 있다고 반문할 수 있으나, 실제로 이런 식의 정책을 행동에 옮기는 주변나라가 있습니다. 일본이 그렇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번 4월부터 외국 노동자들에게 ‘귀국 지원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귀국 경비를 지원하는 대신 앞으로 재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일본 입국을 금지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후생노동성이 주도하는 이 ‘일본계 실직자 귀국 지원 사업’은 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 국적의 취업 비자를 가진 일본 거주자가 실직 상태에서 재취업을 포기하고 귀국할 때 신청자에게 30만 엔, 부양가족에게 1인당 20만 엔을 지급하는 제도로, ‘영주자’ ‘일본인 배우자’ 등이 대상이어서 사실상 남미 출신 일본계와 그 가족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거품경제가 절정이던 1989년부터 부족한 일손을 채우려고 일본인 이민자가 많은 브라질 등을 대상으로 일본계 3세까지 가족을 포함해 무제한 입국을 허용했었습니다. 이후 일자리를 구해 일본에 온 남미인은 지금까지 50만 명 안팎에 이르고, 주로 자동차공장 등에 취업했던 이들은 지난해 말 감원 바람에 일자리를 잃고 상당수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사회 문제로 부각이 되는 상황입니다.

허드렛일 할 외국인 근로자들을 내쫓는다손 치더라도 그 자리를 과연 자국민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어찌 되었든 간에 자국 내 실업률을 낮추려고 내려진 조치이고, 이런 자국민 보호 조치는 일본뿐만 아니라 스페인 등의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수긍도 가지만, 부작용이 뻔한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일본 정부의 대책 내면에는 ‘자국민 보호 정신’이 깔린 듯싶습니다. 우리 정부는 실업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나이 제한과 같은 편견 있는 고용의 장벽을 낮추고는 있지만, 보다 경쟁을 고도화시켜서 좋은 인력을 경영에 활용하는 것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한 요소가 포함되기를 기대합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 잘하고는 직원을 내보낸다면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얼마 전 만난 선배가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라는 얘기에 너무 놀랐습니다. 고작 쉰한 살이었거든요.

그리고 그가 할 수 있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많은 듯싶었는데, 1년 넘는 재취업 활동 기간에 상처만 깊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취업마저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해야할 일인가요?

나이로 내쫓지 말고 시험봐서 합격자만 남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차피 경쟁시대 아닌가요?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자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들에게 일자리를 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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