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188] 금융 ‘기관’이 금융 ‘회사’로 불릴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대한민국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유엔한국부흥단(UNKRA)이 네이산 협회(Nathan)에 용역을 의뢰해서 내놓은 일명 네이산 보고서인 ‘한국경제재건계획’을 1953년 3월에 발표하였다.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시기이다. 이른바 경제개발계획인 계획경제이다. 그런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적인 견해로 시작되지 못했고, 1960년 4월 14일에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으나, 나흘 뒤에 터진 4.19 혁명에 의해 시행되지 못했었다.

장면 정부는 1960년 9월부터 경제개발계획의 시행의사를 밝히고, ‘한국의 경제개혁 비망록’이라는 외교 문서를 미국에 전달하고 ‘경제개발 7개년 계획’을 정리하여, 1961년 2월 민주당 정부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수립 요강’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대해서 민주당과 정부 내각에서 경제를 계획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주의적이라고 반대하는 이도 있었으나 공공재, 기간시설 등 꼭 필요한 것만 지원하고 시장경제 위주로 경제정책을 활용한다는 것으로 비판에 대응하였다. 이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61년 5월 15일 국무회의에 보고되었고, 같은 날 부흥부의 명의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다음날인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이 발발하게 된다.

그러나 516 혁명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화급한 문제는 경제문제였고, “앞으로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서, 혁명지도부는 경제문제 해결을 혁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이유로 간주하고, 민주당이 만들었다가 사장위기에 빠진 ‘5개년 경제개발 계획안’을 토대로 ‘경제재건계획’을 다시 수정하여, 혁명 2개월 만인 7월 22일 경제기획원 신설과 함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이렇게 난산 끝에 경제개발계획은 국가 경제의 획을 바꾸는 가장 원대한 계획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국가의 중추기관으로 금융이 등장한다. 이때는 금융 ‘기관’이었다.

국가를 비롯한 가계까지 경제주체는 수입과 지출이라는 예산의 제약 하에서 경제 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가계의 경우 자신의 노동력을 통해서 그 대가를 자신의 수익으로 하는 흑자 지출단위이고, 기업과 정부는 각각 투자와 재정활동에 전념하는 적자 지출단위이다. 국민경제 전체로 보면 항상 저축과 투자가 일치하지만, 개별 경제주체로 보면 자신의 수익과 지출이 상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흑자지출단위와 적자지출단위 간에서 흑자지축단위로부터 자금을 흡수하여 이를 적자지출단위에 연결시켜 주는 것이 금융기관이다.

금융기관의 자금수요자인 기업에게 융자 또는 자금수요자가 발행한 유가증권을 매입하고 이를 위해 자금은 자금공급자로부터 흡수한 각종 예금, 신탁, 보험증권, 채권 등으로 조달하는 금융행위를 한다. 금융행위라는 측면에서 보면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일반기업에서도 금융행위를 할 수 있으나, 일반기업에게 있어서 금융행위는 생산활동에 수반되는 2차적인 활동인데 반해, 금융기관의 금융행위는 이와 반대로 금융행위 자체가 주요 업무이며, 실물생산활동은 이에 수반하는 2차적인 활동이라는 점이다.

물론 금융기관이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가 도출될 수 있으나, 자금의 공급자가 자금의 수요자에게 직접 대여해주면 경제적으로 이득일텐데, 왜 금융기관이 중간에서 비용발생의 주체가 되고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그런데 금융시장이 완전히 정보가 균등하게 유통될 수 있는 완전한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행위에 특화된 금융기관이 존재함으로 자금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보를 종합하고, 개인이 할 수 없는 이자지급이나 공정성 등의 문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 등을 고려한 한 나라 전체경제로 보아서는 절대적으로 효율적이며, 이로 인해서 발행하는 경제적 비용은 긍융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한 대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금융사의 업무 행태를 보면 경제를 떠받치는 국가경제의 중추기관으로서의 역할인 금융 ‘기관’이기 보다는, 한갓 돈벌이 중심을 둔 금융 ‘회사’로 전락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즉 공공성에 우선하는 기관이라기 보다는 수익 만을 목적으로 이를 추구하는 ‘회사’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수익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경제환경에 대해서는 일부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는 하다.

자립적인 산업화와 대형화 그리고 겸업화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내몰고 있기는 하지만,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이 50조원을 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중 은행은 앞다투어 대출금리는 올리고 예금금리는 낮추는 불편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객인 상장사 실적은 저조함에도 불구하고 은행만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은행 뿐만이 아니다. 증권회사는 고객유치를 위해 유통업체와 똑같은 방식의 선물지급 또는 할인 등 이벤트 중심의 경품행진을 이어가며 고객을 유치하고 있고, 카드회사는 연일 카드 발급을 위해 탈법과 합법 사이의 틈새를 찾는데 열중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경제개발계획을 통해 나라가 잘 살게된 그 큰 공훈 중에 하나로 금융기관을 꼽았고, 그들의 노고에 모두들 경외심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주역의 후배들은 금융 ‘기관’을 한낮 금융 ‘회사’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진실 앞에 무심코 지날 수 없는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 ‘기관’이 금융 ‘회사’로 전락하고, 그렇게 불릴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앞에 금융인 모두는 깊이 국민경제 앞에 반성해야 할 것이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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