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237] ‘더치페이(Dutch Pay)’를 국제표준 예절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

음식점 계산대에서 서로 돈 내겠다고 승강이를 벌이는 세대는 시니어이기 십상이다. 대체로 “내가 을(乙)이니 갑(甲)에게 사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계산하는 것이다.” 또는 “지난번에 얻어먹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사야 할 차례다.” 또는 “선배는 영원한 물주다.”라는 등 몇 가지로 구분되는 이유로 설명된다.

계약상 갑(甲)은 을(乙)에게 음식값을 계산해야 하거나 하대해야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계산을 치러야 직성이 풀리고 그것이 예의처럼 받아 들여지는 것이 연장자들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풍습 중 하나이다. 물론 어떠한 돈을 내야겠다는 지급 경쟁이 있더라도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로 마무리되지 않는 경우는 있다. ‘이번에 신세를 졌으니 다음에는 잊지 않고 내가 계산을 해야 하겠다.’라는 기억도 해야 한다. 이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풍양속으로 보이기보다는 가식적이고 비효율적인 관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렇게 성문화된 규칙은 없지만, 음식값 계산을 통해서 대접하려 거나 대접을 받으려는 것이 젊은 세대에게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더구나 ‘국제표준(Global Standard)’이라는 세계화의 물결이 불기 시작하면서 ‘내가 먹은 값은 내가 치른다.’라는 원칙이 선진화된 예절로 불리기까지 한다.


▲유학시절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감기로 고생하자 홈스테이 아저씨가 준비해 준 저녁 식사 /사진. 김형래

그러나 이 철옹성 같은 ‘각자 내기(Dutch Pay)’ 방식에는 반전이 있다. 신사의 예절로 알려진 ‘영국’에서는 ‘돌아가며 사기(Round Buying)’이라는 현존하는 강력한 풍습이 그것이다.  이 ‘돌아가며 사기’는 친구들 혹은 동료가 술집(Pub이라고 불리는 술도 팔고 음식도 파는 곳)에 갔을 때, 누군가 한 명이 대표로 계산대가 있는 바에 가서 한꺼번에 여러 잔을 사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한턱을 낸다.”라는 표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풍습이다.

이 아주 오래된 관습이 지금도 남아 있고, 잘 활용되면서 이것을 보고 배운 유학생이나 현지 상사 직원들은 한국에 돌아와서는 규칙을 설명하고 함께 할 것을 권한다. 우리 풍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이 풍습이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풍습의 본질 때문이다. ‘돌아가며 사기’ 는 참여자 모두가 한 번씩 돌아가면서 산다는 규칙이 적용된다는 것이고, 그 규칙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다음에도 또 만난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암묵적으로 나눈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 잔씩 돌리기’는 ‘우리 다음에 또 만나자’라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약속인가?

시니어가 계산대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식사 값 계산을 끝으로 당신과의 거래는 끝이요.’라는 뜻을 갖거나 ‘내가 돈을 낼 형편은 아니지만, 체면 상 돈을 낼 수 밖에 없다.’라는 해석은 올바른 이해가 아닐 것이다.  ‘각자 내기(Dutch Pay)’가 마치 무슨 국제산업기기표준척도처럼 취급받으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야만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문화와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돌릴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출신의 ‘각자 내기(Dutch Pay)’와 네덜란드 출신의 ‘돌아가며 사기(Round Buy)’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식민지 경쟁을 벌이던 1600년대로 돌아간다. 두 나라가 서로 맞서서 대응하며 갈등하던 시대적 유산이고 다른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니어 세대가 계산대에서 지급하는 방식을 두고 주니어 세대가 흉을 보는 것도 옳지 못하지만, 계산이라는 경제 활동의 중요한 순간에 담긴 깊은 뜻을 배제하고 근거도 없는 ‘세계 공통기준’을 언급하는 것은 바르지 않는 지식의 소산이므로 무시해도 좋을 듯싶다. 시니어 세대가 서로 계산대에서 경쟁하듯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다음에 우리 또 만나자. 그렇게 하려고 내가 계산하려고 한다.’로 해석하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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