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303] 차명(借名)계좌를 만들면 양쪽 모두 처벌 받는다.

기록에 따르면 우리네 금융 거래는 계(契)로부터 시작된다. 기원 1세기경의 삼한시대까지 올라간다. 농경문화 속에서 생산이 1년에 정해진 시기에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잔치를 벌이거나 제사를 지내거나 모여서 함께 술을 마시는 등에 쓰는 목적으로 여러 사람이 금전을 대표자에게 맡겨서 보관하고 관리하는 관행이 2천 년이나 되었다. 근대식 금융제도가 들어선 것이 불과 1백여 년에 불과한 것을 보면 금융거래에 있어서 제도가 적극적으로 도입된 것은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면서 저축의 장려를 위해 예금주에 대한 비밀보장, 가명(假名), 차명(借名) 혹은 무기명에 의한 금융 거래를 허용해왔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자 각종 금융 비리 사건과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었다. 결정적으로는 1982년 이철희 장영자 사건이 발단되었다. 이 시기에 금융실명제실시를 발표했는데 제도의 미비와 정치적 이유로 실제 적용은 보류되었었다.

1993년 8월 12일 밤 8시, 당시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긴급명령인 긴급 재정 경제 명령 제165호를 발동하여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을 위한 법률’을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비실명제의 경제활동은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는 지하경제를 부추기고 투기성 자금, 부정 부패자금 등의 활동 통로가 되어 실물경제의 발달을 저해하는데 금융실명제는 이러한 자금의 흐름을 막고, 추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금융자산소득의 흐름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종합소득세제의 실시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가명, 무기명 자산들이 실명화되어 지하경제의 규모를 억제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또한 정경유착등 각종 부정 부패 사건의 자금 추적에 큰 도움이 되었고 금융실명제의 후속조치로서 금융소득종합과세 부과가 시행되었다. 그런데 제도가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관계 당국은 아직도 차명(車名) 거래의 관행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나 보다.

지난 2014년 5월 1일, 국회가 정무위원회를 열고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불법 자금을 숨기거나 세금을 내지 않을 목적으로 가족이나 다른 사람 이름으로 차명(借名) 계좌를 만들 경우,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사람이나 이름을 빌려준 사람 모두 처벌된다. 이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지금도 조세범 처벌법 등 각 법률에 불법 차명계좌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지만, 이번 개정안이 이를 통일하면서 처벌 강도를 높인 것이다.

이번 개정에서 중요한 변화를 보면 차명계좌에 들어있는 돈은 계좌 명의자의 소유로 추정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계좌를 만들었다면 계좌주가 실제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이 될 수 있고, 실제 자금의 주인은 자기 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 실제 주인이라면 이름을 빌려서 계좌를 만들었다는 것과 불법 자금이나 탈세 목적으로 만든 계좌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야 돈을 지킬 수 있다.

예외는 있다. 예금자 보호 규정에 따라 많은 돈은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쪼개서 배우자나 자녀 앞으로 가입하거나, 모임의 회비 용도로 계좌를 만드는 등 선의의 차명 계좌는 계속 허용된다. 이 개정안은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친분이라는 끊을 수 없는 관계가 거절할 수 없는 부탁 중에 하나가 보증이었고, 또 하나가 차명 계좌 개설이었다. 그러나 제도의 개선은 이러한 부담의 고리를 끊고 부당함을 개선하려는데 있다. 이번 제도 개정의 기회로 차명으로 계좌를 만들어준 사실이 있는지 주변을 되돌아보는 것을 권한다. 몰랐다는 것이 면죄의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차명으로 계좌를 만드는 것에 대한 처벌의 수위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도 그 행위가 범죄를 돕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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