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330] 가끔은 시니어가 주니어를 실망하게 하기도 한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H 사장은 오랜 인연의 후배이지만 친구다. 내가 나이로만 위일 뿐 그가 창업한 회사를 이끌며 20여 년을 거친 생존경쟁의 최전방에서 살아낸 지식과 통찰력은 조금은 떨어져 산 나보다 훨씬 위다. 어쩌면 한국적 정서가 나를 위에 올려놓았을 뿐 인생의 무게로 보면 내가 교만을 떨어보아도 감히 반말하기가 불편한 그런 무게감을 지닌 친구다. 더구나 그의 호방하게 큰 목소리와 몸무게 0.1톤의 규모로 보면 많이 비교되지만, 객지벗 10년이면 친구라고 서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만난 지라 가리고 거칠 것 없이 터놓고 지내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얼마 전 H 사장이 용이 불을 토하듯 “형님, 경험과 지혜란 것이 이런 것이었나요?” 거친 불만을 나에게 쏟아내는 상황에서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 한 마디를 통해서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2년 전부터 도약을 위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던 H 사장은 시장개척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젊은 나이에 회사를 설립하고 전문성을 높여 업계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던 터에 젊은 사장은 한국적 정서인 인맥을 통한 시장개척에 자신의 한계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 구하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훈련해야 할 주니어급 신입보다는 경력이 풍부한 시니어급 경력자를 뽑는 것이 좋겠다고 분명하게 방향을 제시했다. 딱히 이러저러한 설명도 있었지만 일관된 주문을 한 셈이다.

H 사장은 나의 얘기를 철석같이 의존하면서 시니어급 경력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주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대기업 출신의 조기 퇴직자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랑을 해왔다. 고문으로 모시기로 했다며 얘기하는 그분의 자격조건과 경력은 마치 제트기 조종사와 같이 보통 직장인들에게는 없는 화려강산이건만, 작은 중소기업에서 하는 일은 마치 제트기 조종사에게는 하찮을 수 있는 마을버스 운전사 수준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나도 공감하며 걱정했지만, 일주일에 이틀 동안 반나절씩 근무하고, 금요일 오전에 영업회의 1시간 참여가 의무사항인 느슨한 자리로 합의되었다는 것이다. 면접을 통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서로 불만없는 이해하기에 순조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환영할 만한 첫 번째 소식이었다.

나중에 H 사장의 얘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고문님 입사 후 두어 달의 밀월 기간이 지나고 나니 겸손의 초기 모습에서 최고경영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처음 요구 사항은 매일 출근 할 테니 ‘책상을 달라.’라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급여는 변동이 없는대로. 빈자리가 하나 있으나 입구라서 전 직원 좌석배치를 바꾸어 조용한 곳에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매일 조기 정시 출근을 하시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회사에 관심과 정성이 큰 습관을 지니시니 처음에는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매일 출근하시니 컴퓨터와 직통전화를 놔달라고 하시더라는 것이다. 옆에 있는 직원의 전화를 끌어다 쓰시는 것이 안쓰럽고 마땅한 일이라 준비해 드렸다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차 정기권을 달라고 하시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총무를 맡은 여직원에서 수시로 고객용 주차권을 받아 가셨는데, 여직원이 지급량이 많아지니 종결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매일 8시에 출근해서는 10시가 정시 출근인 직원들에게 “군기가 빠졌다.”라고 호통치시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원 간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 소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H 사장이 신세대에게 못할 말을 대신해주는 것 같은 생각에 사장의 마음을 헤아리는 면에서 고맙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소식으로 H 사장은 결별 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니어 고문님의 대응도 만만치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직원이 열악한 근로조건에 있으며 복리후생도 미흡하니 개선해야 한다는 직언을 H 사장에게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직원의 업무 분담도 잘못되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에 새로운 조직도를 그려오고, 직원의 소리도 정리해서 전해주더라는 것이다. 이 부분까지는 조언이고 충고이기에 참을 수 있었지만, 정작 시니어 고문께서 해야 할 업무적 역할은 뒷전이었다는 것이다. 헤어지면서 아주 섭섭하고 불편한 감정을 던져 H 사장은 크게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그 일과 관련되었는지 모르나 요즘 H 사장은 그 자주 하던 연락을 뚝 끊었다.

어쩌다가 한 번쯤, 비슷한 얘기를 듣곤 한다. ‘일로 시니어와 친해지면 눌린다.’라는 식의 표현으로. 당연히 경험이 많고 지혜가 많으니 어찌 충언과 고언의 기회를 무심코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다음에 요청에 따른 조언이 순서일 것이다.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길을 걷는 어르신을 돕는다고 지팡이를 빼앗는 친절은 누구에도 칭찬받지 못할 일이다. 항상 그런 일은 아니지만, 가끔은 시니어가 주니어를 실망하게 하기도 한다.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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