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357] 시니어의 명함 속 직함, 높은 이유 있다

시니어 명함 전문가를 만났다. 그는 자신 있게 시니어가 퇴직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명함이라며, 이전 직장의 명함을 내밀면서 향수에 빠진 애절한 눈빛을 접고, 새롭게 하고 싶은 일에 걸맞은 명함을 새기라고 충고한다. 스스로 조직인 분은 그럴 필요가 없지만, 명함에 적혀있는 그것이 본인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보여주는 시니어의 명함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모두 고위직급이나 직책을 가진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마치 ‘예비역’이라고 한 계급 올려서 불러들이는 것이나, 재직 당시 최고의 직급 또는 직책을 퇴직 후에도 계속 불러들이는 것보다 훨씬 인플레이션 된 것을 볼 수 있다.

왜 그렇게 놓은 직급을 명함에 적어 놓는 것일까? 인간의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니 높은 직급을 명함에 적어놓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인간은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에 있는 욕구가 나타나서 그것을 충족하고 싶고, 그것이 충족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모두 다섯 단계라는 동기 이론의 일종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가장 아래 단계가 ‘생리욕구(Psysiological Need)’로 인간이 생존을 위한 기초적 욕구를 말한다. 허기를 면하고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구로 의식주부터 시작된다. 그다음 단계가 ‘안전 욕구(Security and safety Need)’인데 신체적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지고 싶다는 욕구이다. 위험이나 빼앗기거나 불안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충족되면 3단계 ‘소속과 애정 욕구(Social Need)’이다. 가족, 친구, 친척 등과 친교를 맺고 타인과 함께 있다는 소속감을 맛보고 싶다는 욕구이다. 원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귀속되고 싶다는 욕구다. 주변을 살펴보면 주니어보다는 시니어가 모임을 더 많이 하고, 마흔 줄에 들어서면 참석하지 않던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에 못 이기는 듯이 나가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현상이다. 그다음이 ‘존경의 욕구(Esteem Need)’인데 이제는 자존감을 갖고 타인의 존경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발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욕구가 충족되면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 Need)’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기를 계속 발전하게 하고자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자신을 완성하고 삶의 보람을 찾으려는 욕구이다. 다른 욕구는 충족되면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아실현 욕구는 충족될수록 더욱 증대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매슬로의 이론을 적용해보면 직장을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5층에서 2층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충격인 셈이다.

그런데 명함이라는 것은 2층에서 3층으로 자연스럽게 올라서게 하는 에스컬레이터인 셈이다. 바로 2층에 있는 안전욕구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욕구를 3층 소속과 애정의 욕구 수준으로 올려놓는 것이다. 물론 명함에 적혀있는 내용이 허구이면 상상으로 3층에 올라선 것이고, 실체가 있고 그곳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으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시니어가 자주 모이는 것은 바로 3층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인 셈이다. 그래서 시니어에게는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소속감을 부여하는 것이 그들에게 행복을 더해주는 요소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안전욕구 단계에서 소속과 애정의 욕구로 올라서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존경의 욕구로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높은 직급을 갖는 것은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과 같이 빠르고 안전하고 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본성적으로 인간은 욕구(Need)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충족시키려는 행위는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몇 년 사이에 협동조합이 시니어 사이에 모두 겪어야 하는 사춘기의 광풍처럼 매섭게 스쳐 지나갔다. 명함집을 열어보니 당시에 새로 나누어주신 직함이 거의 모두 이사, 이사장 등 고위 직급을 차지하고 있었다. 친한 시니어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간사나 총무 같은 일을 하는 실무자에게도 기본 부장 또는 이사라는 회사로서는 고위 간부나 중역의 직함을 부여한다고 했다.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사업이 되니 안되느니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은 모여서 ‘소속과 애정 욕구’의 충족을 맛본 것이고, 높은 직위를 담은 명함으로 ‘존경의 욕구’가 충족된 것만으로도 사회경제적으로 보는 이득은 크다 할 것이다.

시니어의 명함에 쓰인 높은 직급이나 직책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말자. 현업에서의 책임과 권한도 없고 그에 따르는 복리 후생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순수한 욕구 충족의 아름다운 시도를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쯤은 망설이고 주변 시선을 의식했을 터인데, 그 정도면 충분히 대가를 치렀다고 인정(認定)하는 인정(人情)도 필요하다.

시니어에게 부탁이 있다면 일만 있으면 “사장 나와!” 같은 상황적 오해를 접으셨으면 한다. 냉장고 망가졌다고 본사의 사장님이 집으로 찾아가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명함에 적힌 동급의 직책자를 당장 나오라고 찾으시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안 그럴 것이라고 하실지 모르나,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도 아직 한국 사회는 시니어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4층 욕구인 ‘존경의 욕구’가 작동함을 알고 있지만, 애써 받아내려는 모습은 안타깝게 보이고 체면이 구겨진다는 반작용도 고려하심이 좋을 듯하다.

주변에 높은 직위로 새 명함 새긴 분이 계시다면 굳이 비난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격려하자.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의 하나이기에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시도는 아직 젊고 건강한 도전의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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