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360] 중국집 주방장을 초대한 선배의 정년퇴임식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주제의 대중 매체가 봇물이 터지듯 합니다. 그런데 맛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1학년의 수준도 갖추지 못한 저에게는 닿지 못할 미답의 영역이고 배워도 익혀지지 않는 불가능 영역입니다.  그러니 요즘 대세의 먹방을 즐기지 못하는 비문화인이 되어가는 것 같아 소외감마저 듭니다.

제가 첫 번째 책을 출간했던 7~8년 전의 일입니다.  모교 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신 선배께서 고급 중식당으로 부르셨습니다. 학보사 기자의 선후배 관계는 질기고 끈끈해서 나이와 학과를 불문하고 선후배 간의 관계가 돈독하기에는 어떤 동아리보다 앞선다고 자부하던 차였습니다. 선배의 전공은 교육학이었지만 부전공으로 노인학을 공부했다고 말씀하시며, 제가 전공도 아닌 시니어 분야에서 어렵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해서 밥 한 끼 사주시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저 짜장면 한 그릇도 과분할 만하데 이름도 모르는 요리를 시켜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커다란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은 맛을 제대로 모르는 나에게 부드럽고 우아한 것이 지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나 싶게 맛있어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선배는 음식을 드시면서 이것은 재료가 무엇이고 어떻게 요리를 했고 어떤 먹는 느낌인지 일일이 꼽아 알려주셨습니다. 공부만 하시는 학자이신 줄 알았는데, 요리사 버금가는 음식에 대한 식견이 있으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처음 알게 된 그 음식 이름을 잊지 않으려 외우고 또 외웠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그때 그 음식이라고 대답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 음식의 이름을 잊었습니다. 어쩌다 그 음식 이름을 생각하려고 기억을 되돌려 봐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선배님을 연상해도, 그 식당을 연상해도 맛에 무지한 나는 그 음식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행사가 있어 중국 식당에서 찾았을 때도 메뉴만 샅샅이 찾아보아도 선배와 함께 먹었던 그 음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그 음식을 잊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학보사 선배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그 중국 요리를 사주셨던 선배께서 정년 퇴임을 하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갑자기 저 혼자 불러서 사주셨던 중국 요리가 생각났습니다. 후배들을 불러 모아 행사가 진행되는 알렌관 무악홀로 향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주변 주차장은 고급 승용차로 가득 찼는데, 한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가 세울 곳을 찾지 못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눈에 밟혔습니다. 철가방이 빈 것으로 보아 그릇을 찾으러 온 모양인데 행사장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사장에 들어섰고 곧바로 밖의 일을 잊었습니다.

행사는 순서지에 따라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등록, 선배의 대학 동창이신 아마도 교육계 거물의 축사 그리고 제자들의 축하 공연…. “죽어도 못 보내~” 하는 노래로 개사해서 선배의 퇴임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리고 선배님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책 출간 기념을 겸하다 보니 저자 강연의 순서가 이어진 셈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객석에 앉아 계신 한 분을 불러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순간 아까 밖에 서성이던 중국집 오토바이 아저씨였습니다.

“저분은 제가 건강한 정년 퇴임을 도와주신 가장 소중한 분 중에 한 분이십니다. 맛있는 ‘전가복’을 평생토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자리에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자 어렵게 모셨습니다.”

‘전가복’이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자고 잊지 않으려고 애쓰던 그 음식 이름이 ‘전가복(全家福)’이었습니다. 음식의 이름이 이처럼 복된 것이 또 있을까? 전복이 들어가서 전가복이 아니고, 가족 모두에게 복을 전해준다는 이름의 음식. 특별한 재료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주방장이 있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요리라고 들었던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선배의 퇴임식에서 음식으로 다져온 인연의 주인공 중국집 주방장과의 수 십년간 이어진 달달한 우정을 생각하면서, 격의없이 이어진 오랜 인연에 대한 부러움이 몰려옵니다. ⓒ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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