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신의 선물이다.

NIKON CORPORATION | NIKON D50 | Aperture Priority | Multi-Segment | Manual W/B | 1/45sec | F5.6 | F5.7 | +0.5EV | 200mm | 35mm equiv 300mm | No Flash | 2006:06:13 21:19:52 | 15619 x 9730 pixels
토고전이 있던 날, 동네 공원에서는 "불을 뿜는 듯한 열정의 승리기원 콘서트"가 열렸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에 물러난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은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의 지령자라는 꼬리표와 함께 역사와 민주주의의 죄인이라는 혹독한 낙인이 찍힌 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날 행한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위대함은 행복 속에서가 아니라, 시련 속에서 태어납니다.” 어쩌면 이 한마디가 그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20년 후 1994년 닉슨이 세상을 떠났을 때 모두가 외면할 것 같은 장례식에는 당시 생존했던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이 모두 참석했고, 그의 하야를 종용했던 <뉴욕타임스>는 그를 ‘패배를 패배시킨 사람’이라고 추모할 정도였다. 과연 2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것일까?
닉슨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역사연구에 골몰하면서 여러 권의 책을 냈다. 특히 1992년 출간된 『기회를 포착하라』와 마지막 저서였던 『평화를 넘어서』 등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미․중 수교’, ‘미․소 화해’ 같은 닉슨 특유의 데탕트 정책이 동구 사회주의 블록과 소비에트의 해체, 그리고 중국의 개방을 유도해낸 밑거름이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1990년대 이후 초강대국 미국의 출현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빌 클린턴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새로운 미국의 세대를 선언하는 정치적 제스처로서 누구보다도 먼저 데탕트의 주역이었던 닉슨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오명을 쓰고 백악관을 떠난 지 19년만의 일이었다. 닉슨은 그렇게 자신의 명예를 하나씩 회복해나갔고, 그러한 노력은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소재 닉슨의 기념관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라는 그의 좌우명이 적혀 있다. 그는 과거의 패배에 발목 잡히지 않았고 패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도 않았다. 그는 한번 패배를 영원한 패배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패배를 다시 패배시킬 수 있었다.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승리는 고난을 신의 선물로 감사했기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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