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박8일 유럽여행 - (4) 까따꼼베에서 빤떼온을 향해
정말로 여행 중에 길 잃고 싶지 않은 곳
여행지에서 안내자를 잃고 길을 헤매인 적이 있다면 추억아닌 추억. 그나마 친절하건 친절하지 않건간에 길찾아주는 이가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다. 그간의 무용담이 여행담보다 과장되기 일쑤인데, 길을 잃으면 길가에서 절대로 여행안내소를 찾을 수도 없는 곳이 있다면, 바로 그 곳이 로마의 까따꼼베(Catacombe)이다. 우리가 잘 아는 주변국의 어떤 관광객이 이곳에서 길을 잃고 죽었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카타콤은 원래 그리스어 ‘카타콤베’로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하며,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까따꼼베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흔적으로는 묘비명과 초대 그리스도 교도들이 예술의 상징으로서 그린 물고기 그림 등이 남아 있다.
까따꼼베는 뚜파(Tufa)라는 응회암(凝灰岩: 화산이 분출할 때 나온 화산재 따위의 물질이 굳어져 만들어진 암석)이 있는 지역에서 안전하고 쉽게 굴을 팔 수 있는 환경때문에 고대 로마인들이 지하세계를 건설한 것이다. 까따꼼베가 생긴 유래는 여러 가지이지만, 종교적 박해 때문에 피난처를 만든 것이라기 보다는 화장보다 매장을 선호했던 로마의 기독교인과 유태인들이 땅 값이 비싼 시가지 대신 지하의 공동묘지를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이성적 판단이지 않을까 한다.

[사진설명 : 좌상단. 까따꼼베의 장례장면을 펜화로 그린 것. 바탕사진은 도미띨라 까따꼼베의 내부]
왜? 죽음의 공간을 찾았을까?
까따꼼베는 한 증의 높이가 3~5m인 여러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벽을 따라 수천 개의 묘실이 있다. 5세기 초반까지는 공동묘지로 이용되었고, 그후에는 순교자들이 매장되면서 성스러운 장소가 되었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로마를 찾았을 때, 순교자에 대한 숭배가 그들의 신성한 무덤 부근에 매장되어 구원을 얻으려는 마음과 연결되었다고 한다. 시체는 종이로 감싼 후 안치되었는데, 벽돌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문에 죽은 이의 이름을 새겼다고 하는데, 9세기 초반에 유골들이 교회로 이장되면서 대부분의 까따꼼베는 빈 채로 남게 되었지만, 영적인 이유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지 중 까따꼼베를 찾는 것은 죽음의 공간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것이 보통스러운 판단은 아니다. 왜 하필 무덤을 찾아다닐까? 어쨋거나 몇 안되는 무덤 여행상품 중 하나인 로마 외곽에 있는 도미띨라 까따꼼베(Domitila Catacombe)를 찾았다. 무덤을 옆으로 파헤치고 굴을 만들어 마치 묘지 내부를 들여다 보는 것과 같아서, 좁은 통로를 걷고 묘지 어두운 불빛에 의지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딪는 동안, 섬뜩한 공포감이 목 뒷덜미를 내내 잡고 있었다. 이딸리아 안내자가 굽이굽이 통로를 안내하는 모퉁이 모퉁이를 돌 때, 목이 잔뜩 잠기고 기도가 절로 나왔다.
까따꼼베에 들어서서 벗어날 때까지 불과 1시간, 사전 공부없이 남들 공동묘지를 찾는 마음이었다면, 불편하고 불쾌하기 그지 없었을 그 1시간이었지만, 참으로 귀한 여행지의 한 곳임에 분명했다.

[사진설명 : 도미띨라 까따꼼베의 내부 사진. 우측 상단은 입장권. 좌측 하단의 아치형 무덤으로 상부가 아치이고 프레스꼬로 벽을 장식한 이르꼬졸리움(Arcosolium)이라는 묘실. 예배당과 성물판매소도 자리잡아 있다]
걷기 싫으면 '벤츠 승용차'를 타라?! 불친절한 로마문명의 심장부
까따꼼베를 둘러본 뒤 다시 꼴로쎄움 주변으로 돌아왔다. 꼴로쎄움 주변의 이른바 시내 중심에는 관광객용 버스가 진입할 수 없다. 그래서 걸어서 다니던지, 아니면 '벤츠 승용차'관광을 종용 받게된다. 여행정보에 낯선 관광객들은 두 당 몇 십 유로를 내고는 까따꼼베부터 꼴로쎄움까지의 반 나절 팔자에 없던 벤츠 관광을 하게 된다.
벤츠를 타고 찾은 곳이 포로 로마노(Foro Romano)다. 고대 로마 시절 대부분의 도시에는 포룸(영어 포럼의 어원)이라고 불리는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광장이 있었는데, 이 포로 로마노는 수도 로마에 개설된 최초의 포룸이며,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원로원 의사당과 신전 등 공공기구와 함께 일상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동쪽으로 가면 꼴로쎄움에, 서쪽으로 가면 떼베레 강에, 남쪽으로 가면 빨라띠노 언덕에, 북쪽으로 가면 깜삐돌리오 언덕에 이른다.
로마 제국의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아버지로 의인화된 도시 로마, 그리고 비너스에게 바쳐진 신전이 이곳이다. 신화적인 의미가 가득 담겨져 있고 역사적으로는 참으로 의미가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 중에 띠뚜스의 아치가 현존하는 로마의 개선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비교적 건재한 편이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293년에 걸쳐 로마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으나,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하고 수도 기능이 라벤나로 옮겨지면서 이민족의 약탈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부터는 그대로 방치하다가 토사 아래에 묻혀 버렸다. 포로 로마노 발굴작업은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유적들은 대부분 제정 시대 이후의 것이라고 한다.

[사진설명 : 포로로마노 주변 경관, 수 많은 살육과 암투 그리고 정쟁이 쟁쟁하게 들리는 듯 하다. 또한 이곳이야 말로 포럼이 시작된 곳. 그리고 좌측 하단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관광용 벤츠 승용차'. 아마도 벤츠 승용차를 못타보셨다면 로마에서 첫 경험으로 하실 수 있다. ]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망한 것도 아니다.
바로 이어서 대전차 경기장(Circo Massimo)을 찾았다. 황량한 공터! 로마 귀족이 열광하던 전차 경주가 열리던 곳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좁아서 사람들로 복잡한 로마 시네를 이렇듯 덩그라니 비워놓는다는 것에 대해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역사의 기록만 있을 뿐, 유적으로 남아 후세가 기릴만한 소재가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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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위의 사진은 대전차 경기장의 복원도, 아래 사진은 벌판으로만 남아 그 흔적을 크기로만 짐작할 수 있다.]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극찬했던 건축물은 무엇일까?
이름하여 빤떼온(Pantheon). 미켈란젤로 역사 천재였던바 그가 왜 '천사의 설계'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까? 가보면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터.
빤떼온은 높이가 43.3m에 달하는 거대한 건축물인데, 건출물 안에 기둥이 하나도 없다는 것. 이 건물을 받치고 있는 벽의 두께만도 6m에 달한다니 기원전의 건축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빤떼온은 '모든'이라는 의미의 'Pan'과 '신'을 의미하는 'theon'이 합쳐진 말로, 원래 로마의 모든 신에게 봉헌된 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일곱 언덕과 떼베레 강 사이네 자리잡은 로마의 옛 도시 속에 2천년 전의 공간이 바로 빤떼온인 것이다. 최초의 건물은 로마의 정치가 아그리빠(Agripa)가 개인의 땅에 세웠다가 화재를 겪고 118년부터 128년까지 새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빤떼온은 기술적으로 그 완벽성은 뛰어나 지난 서기 128년에 지어진 이후 15세기까지 와서야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을 정도로 누구도 도전할 수 없었던 건축물이었다.
현재 빤떼온의 주변은 까페들로 가득했고, 오히려 방치된 느낌을 지울 수 없으나, 원형 내부에 들어서면 너무 커서 아무것도 거칠 것 없는 하늘보다 더 높은 공간이 나타난다. 그리스 건축의 위대함은 외부 공간의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다면, 빤떼온은 대표적인 로마 건축물로 내부 공간으로 존재하는 건축임에 틀림이 없다.
가장 감탄할 것은 반원형의 지붕에 지름 9m의 하늘로 뚤린 천장이 있는데 비가 와도 빗물이 안 들어온다는 것이라고 한다. 허나 어찌 9m의 구멍으로 비가 안들어 오겠는가? 비는 여름에 건물안의 더운 공기가 떨어지는 비를 밀쳐버린다나 어쩐다나? 아무튼 이 큰 건물에 크게 뚤린 천장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본래의 기능이 아닌 역사박물관의 하나로 관광객의 사진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사진설명 : ① 빤떼온을 펜화로 그린 모양 ② 정면내부 ③ 9m천장에 어찌 비가 안새겠는가? 비가 내려 흥근히 젖은 바닥.④ 빤떼온 앞의 광장. 노천까페의 천막이 보인다. ⑥ 빤떼온의 건축적인 의미에서 본 평면도 및 조감도]
빤떼온에서 나오니 머리가 오히려 무겁기 그지없다. 부족한 지식을 끄집어 내어 놓는데 한계가 있고, 그나마 준비하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부족함에 반성도 되지만, 그나마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눈앞에 있는 보석을 두고 그 가치를 알겠는가?
그래서 여행은 준비가 반, 정리가 반이라고 하는 내 말이 맞다.
이제 7박8일 유럽 여행은 스페인 광장을 향하려 한다. 물론 현재의 여행기는 첫날의 로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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