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닥친 이유를 생각하면 안정을 찾는 길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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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항주의 한 식당 벽면에는 이렇듯 당간부의 사진이 걸려있다. 의외로 젊은 고위직 당간부도 눈에 띄었다.
지난 16일 폐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의 2인자 원 자바오 총리는 중국 경제의 특징을 `불안정`하고, `불균형`하며, `불영속적`이라는 3불(三不)로 표현했다. 주변국인 우리나라의 경제에 미치는 불안감도 동반 증폭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원자바오(溫家寶)라는 중국의 정치인은 누구인가?
1942년 9월 톈진[天津]에서 태어났다. 1965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뒤, 1967년 베이징지질학원 광산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베이징지질학원 지질구조연구생으로 있던 중, 문화대혁명 당시 하방운동으로 인해 1968년 간쑤성[甘肅省] 지질국 지질역학 기술원으로 쫓겨났다.
1978년 간쑤성 지질국 부처장이 되었는데, 이는 1976년에 일어난 탕산[唐山] 대지진 이후 지진 예보 전문가를 찾던 중앙정부에 의해 뛰어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승진을 거듭해 1981년 간쑤성 지질국 부국장을 거쳐 이듬해 중앙정부 지질광산부 정책법규연구실 주임, 1983년 부부장이 되었다.
1985년 중앙판공청 부주임(한국의 여당 사무총장), 1986년 주임을 거쳐 1987년 11월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47세의 젊은 나이로 당 중앙위원 겸 중앙서기처 후보 서기로 임명되었다. 1989년 6월 톈안먼사건 때는 학생들의 입장에 동조하였음에도 축출되지 않고, 오히려 1992년 중앙정치국 후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로 승진하였다.
1998년 3월 국무원 부총리 겸 당 중앙농업영도소조 조장, 2002년 11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었고, 2003년 3월에는 후진타오[胡錦濤]·우방궈[吳邦國]에 이어 당 서열 3위인 국무원 총리로 임명되었다.

思所以亂卽治 (혼란해진 이유를 생각하면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으며),
思所以亡卽存 (멸망한 이유를 생각하면 존립의 길을 찾을 수 있다.)" - 원자바오
우리의 경제가 중국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고 보면.. 그의 발언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해결방식을 독특하게 제시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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