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박8일 유럽여행 - (17) 3,454m '젊은 처녀의 어깨'에 오르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에만 올라도 알프스의 여름 풍광을 상상할 수 있다. 한 여름에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온난화의 영향때문일지는 몰라도 이른바 눈이 샤워처럼 쏟아져 내리는 스노우 샤워 (Snow Shower)를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이야... 야, 참말로 보고는 싶지만 여름철의 스노우 샤워를 위해 또 융프라우를 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그냥 눌러 앉고 싶은 생각은 왜 드는 것일까?

[고도계가 2,366m를 가리킨다. 높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장면]
스위스의 융프라우 역시 내 발목을 잡는다. 물론, 어딜가나 발목잡히지만.
'젊은 처녀의 어깨'를 뜻하는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이다. 그러니 Top of Europe이 틀린 말은 아니다. 융프라우는 산의 이름이고 융프라우요흐 역에서 남서 방향으로 보이는 산이 바로 융프라우이다.
이 융프라우요흐가 세계적인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12년이란다. 이른바 3.1만세 운동 보다 7년전에 3,454m를 철도로 정복한 곳이 이곳 스위스이다. 이렇게 높은 산에 철도로 오를 생각을 하다니... 아돌프 쿠에르첼러(Adolf Guyer-Zeller)가 설계를 했단다. 그의 흉상은 아쉽게도 그의 철도레일과 함께 계단 구석진 곳에 빛도 없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왼쪽 아래 사진 : 아이거반트 역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산 아래의 풍경]
바위산을 관통해 가면서 스위스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을 만들었다.
등산열차는 고도에 따라 그 지형에 맞는 차량으로 바뀌기 때문에 중간 중간에 갈아타야 한다. 철도 노선은 산의 왼쪽 능선을 오르는 그린데 발트(Grindenwald) 노선이 있고, 오른쪽 능선을 오르는 라우터브루넨(Lauterbrunen) 노선이 있다. 어차피 인터라켄 역에서 왕복요금이 같아서,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고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오는 노선을 택했다.
클라이네 샤이데크 (Kleine Scheidegg. 2,061m)에 도착해서는 다시 융프라우요흐 행 등산열차 JB(Jungfraujoch Bahn)로 갈아탄다. 진정 '젊은 처녀의 어깨에 오르는 등산열차인셈이다. 클라이네 샤이데크부터는 바위산을 뚫고 만든 터널을 오른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까지 오르는 구간의 시간은 무려 51분. 컴컴한 터널을 오르는 등산열차 안의 여행객들은 숨죽이며 긴장도가 높아가는 상황이다.

[100년전에 아이스미어 역을 건설하는 인상적인 사진이 걸려있다.]
백두산은 2,744m 그리고 고산병이 발생고도는 2,500m. 그 이상을 통과한다.
급성고산병은 고지대에서 증상은 두통, 나른함, 식욕부진, 숨찬 증세, 현기증, 구역, 구토, 비틀거림, 호흡곤란 등이 생긴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니 거의 수직에 가깝게 2,061m에서 3,454m를 쉬지 않고 오르는 것은 가히 긴장이 될만한 상황. 중간에 전망대 아이거반트 역(Eigerwand. 2,865m) 정차하게 되면, 잠시 여행객들의 긴장을 풀어줄 좁은 창으로 날랜 창 끝처럼 가파른 산비탈이 숨을 멈추게 한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으려 부산을 피워보지만, 좋은 사진을 찍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이어서 아이스미어 역 (Eismeer. 얼음바다. The Sea of Ice. 3,158m)에 도착하면 열차안의 스크린에는 현재높이(current height 3158m)를 가르킨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용기있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창밖은 얼음이 뒤엉켜 시야마저 온전치 않다. 전망대를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은 온통 흰색과 그림자진 흰색뿐이다. 거기에 바깥쪽으로부터 밀려오는 찬기운에 가볍게 뛰는 것마져 쉽지 않은 산소 부족을 서서히 느낄 수 있다. 통로 벽에 붙어 있는 100년전 아이스미어 역의 공사장면이 흑백사진 네 장으로도 충분히 당시의 험난한 공사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스위스가 아니었다.

[컵라면과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우체국, 어딜가나 최고를 좋아하는 모양]
융프라우요흐 역의 최고 특산품은 '스위스칼' 아닌 대한민국 N사의 'S컵라면'
이미 1912년에 개통이 된 관광지여서 그런지 융프라우요흐 역에 연결된 전망대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우체국'이 있다. 오히려 일본우정국에서 세워놓은 빨간색 우체통이 주인인듯 자리를 잡고있다. 우체국 옆에 있는 간이 식당에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컵라면 앞에서 거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머리를 숙이고 식사에 몰입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난 그저 무심코 지나쳤는데, 아내는 동행 여행객들 사이에 젓가락만을 들고 용감하게 돌진을 하고 있었다. 결국...
아내로 부터 "그 흔한 'S라면'도 안 사준 야박한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역을 지나면 플라토(plateau) 전망대에서 돌아오는 길이 바로 얼음궁전이다. 얼음궁전은 그야말로 빙하의 가운데를 깍아 만든 여행객들에게 눈요기 거리의 궁전이다. 왕이 살던 곳은 아니다. 그 많은 여행객들이 지나치는데도 독수리 상 조각을 비롯해서 이굴루니 과 의자 그리고 통로 모두가 빙하인데 더 이상 녹지도 더 이상 얼지도 않으면서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얼음궁전은 빙하를 뚫어 만들었다. 녹지도 얼지도 않게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신기할 뿐]
그리고 아... 스핑크스 전망대. 그리고 융플라우가 보이는 바로 아래. 오후3시 44분. 내 생애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딪고 있었다. 더 이상. 글로 여행기를 적을 수 없는 곳이다.
난 이곳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왕복하는 기간동안 무려 1,483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니 다른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진을 긁어대었다. 어디 자주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장면 장면이 이다지도 생경하고 이국적일 수 없었다.
조금 걸음 속도를 높이면 머리가 띵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발걸음 속도가 느려진다.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이 신체의 운동을 제어하는가 보다. 세찬 바람도 낮은 산소 농도도 장관이 펼쳐지고 있는 경외심에 잊을 지경이 되었다.

[스핑크스 전망대 벽에 누군가가 동판을 새겨 걸어 놓았다. 고도계는 3,618m를 가르킨다.]
전망대에 오르니 어디가 아이거(Eiger)인지, 어디가 멘히(Monch)인지, 어디가 융프라우(Jungfrau)인지 도무지 알수 없지만, 이 큰 광경을 좁은 카메라 렌즈에 담는 다는 것이 얼마나 구차하고 변변치 못한 것인지를 실감하면서 창조주의 위대함이 대지 가득 밀려들었다.
스핑크스 전망대 벽에 걸린 동판에 새겨진 성경구절이 그야말로 이 대목을 설명하는 가장 현명한 생각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O LORD,HOW MANIFOLD ARE THY WORKS! IN WISDOM HAST THOU MADE THEM ALL: THE EARTH IS FULL OF THY RICHES. PSALM 104/24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나이다." 시편 104편 24절.
누구도 지나칠 수 있었던 벽면에서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그 동판을 보았고, 그 상황적 감동이 면도날 같이 빰을 스치는 예리한 바람결마져 나를 무디게 만들었다. 이렇게 순간 순간을 감동하는 나를 보면서 난 여행중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나보다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현지 시각이 오후 4시35분.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유럽의 꼭대기에 정확하게 발자국을 남기고 하산을 시작한다. 이어지는 여행기는 융프라우를 내려오는 과정과 반대로 내려가면서 보여지는 주변 광경들과 스위스 시니어들의 민속공연 그리고 스위스 음식얘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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