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시야에서 거의 사라졌던 지하철 이동 상인의 모습이 다시 객차 안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단순한 풍속의 변화로 치부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구조적 신호가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다시 등장한 지하철 객차 안의 좌판
어제 오후, 서울 지하철 4호선의 비교적 한산한 퇴근길 객차 안에서 잠깐의 소동이 있었습니다. “현재 물품을 팔고 계신 분은 이번 역에서 하차해 주십시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 뒤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아, 바퀴 달린 좌판을 끌고 들어선 시니어 남성 한 분이 승객들의 무릎 위로 선글라스를 하나씩 올려놓기 시작하였습니다. 목청 좋은 호객과, 손가락 두 개로 가격을 표시하는 익숙한 손짓이 이어졌습니다. 카드를 내미는 중년 여성에게는 손사래를 치며 다음 승객을 찾아 자리를 옮겼습니다.
한때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던 이른바 지하철 잡상인, 공식 용어로 무허가 이동 상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1~4호선 등 구도심을 지나는 오래된 노선을 중심으로 이러한 풍경이 부쩍 잦아졌고, 판매 물품도 깔창·우비·파스·무릎 보호대 등 시니어 특화 잡화에 집중되는 양상이라고 합니다.
통계가 말하는 시니어 빈곤의 현실
이 풍경의 배경에는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 온 시니어 빈곤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말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5에 따르면, 우리나라 66세 이상 시니어의 상대적 빈곤율은 3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단연 1위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OECD 평균인 14.8%의 약 2.7배에 달하는 수치이며, 같은 30% 대를 기록한 국가는 에스토니아(37.4%)와 라트비아(33.0%) 정도에 그칩니다.
65세 이상 고용률 또한 38.2%로 OECD 최고 수준이지만, 그 내용은 여유로운 활동이라기보다 생계형 노동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더욱이 75세 이상 시니어 가운데 만성질환 세 가지 이상을 갖고 있는 비율이 46.2%에 이른다는 통계는, 노년의 노동이 결코 한가로운 선택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왜 그들은 다시 지하로 내려왔는가
시니어 이동 상인의 회귀에는 복합적인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첫째, 시니어 자산 구조의 기형성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한국 시니어의 자산 중 실물자산 비율은 85.1%로, 미국(57.8%)과 일본(37%)을 압도합니다. 65세 이상 가구주의 주택 소유율은 67.8%에 달하지만, 집은 있되 매달의 생활비가 부족한 이른바 하우스푸어형 시니어가 광범위하게 존재합니다.
둘째, 연금 체계의 미성숙입니다.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이전 세대인 75세 이상 후기 시니어 계층에서는 공적 이전 소득의 빈곤 완화 효과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점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측에서도 지적된 바 있습니다.
셋째, 디지털 전환과 무현금화의 가속입니다. 카드와 모바일 결제가 일상이 되면서, 소액 현금을 매개로 작동하던 오프라인 노점 경제의 토양은 빠르게 좁아졌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다이소 등 저가 잡화점의 확산, 온라인 쇼핑의 보편화 또한 같은 방향의 압력이었습니다. 한때 택배·경비·청소직으로 옮겨갔던 시니어 노동력 일부가 다시 지하 객차로 흘러들고 있다는 분석은, 비공식 노동시장의 한계가 다시 한 번 드러난 결과로 읽힙니다.
단속과 동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회적 합의
지하철 내 무허가 판매는 명백한 위법 행위에 해당합니다. 철도안전법 제48조는 여객열차 내 무단 영업 등 질서 저해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같은 법 제82조에 따라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도 지하철 보안관을 통한 단속과 신고 절차를 운영 중입니다. 그럼에도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신고하는 시민보다 물건을 사주는 시민이 더 많고, 한 중학생이 SNS에 잡상인을 신고했다고 글을 올렸다가 도리어 비판을 받은 사례는 우리 사회의 양가적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서울교통공사 측 또한 “생계형이라 근절에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일부 보도에서 전해진, 칼갈이 도구를 시연하다 식칼을 휘둘러 승객을 불안하게 만든 사례처럼 상행위가 안전과 충돌하는 지점에서는 법 집행이 단호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동정이 법질서의 근간을 잠식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원과 요구의 균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이동 상인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차원이 아니라, 시니어 빈곤이라는 구조적 과제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동정에 기댄 묵인은 공공질서의 기반을 흔들고, 기계적 단속만으로는 생계의 절벽 앞에 선 시니어를 거리로 다시 떠밀 뿐입니다. 사회 안전망은 두텁게 하되 질서와 책임의 원칙을 동시에 세우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기초연금의 실효성 제고, 75세 이상 후기 시니어에 대한 의료·소득 보장 강화, 그리고 지하 비공식 경제로 흘러드는 인력을 합법적인 시니어 일자리 시장으로 흡수하는 정책 설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공공 공간에서의 안전과 질서에 관한 시민적 합의 또한 재확인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하철 객차에 다시 등장한 좌판은 누군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풍경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노년의 그늘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안쓰러움과 불편함 사이에서 잠시 시선을 거두기보다, 그 자리에 선 시니어가 더 이상 객차의 통로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우리 모두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때입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