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율성의 파도 앞에 선 생명의 보루
문명의 척도는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피느냐에 있다
인류 문명은 가장 연약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되어 왔습니다. 최근 영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조력 사망(Assisted Dying)’ 합법화 바람은 언뜻 보기에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진보적 행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생명을 기능과 효율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위험한 발상이 도사리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철학자 캐슬린 스톡(Kathleen Stock)이 저서 《순순히 물러나지 마라: 조력 사망에 반대하는 논거(Do Not Go Gentle: The Case Against Assisted Dying)》에서 지적했듯, 우리는 지금 ‘자비’라는 이름의 포장지에 싸인 ‘도덕적 어둠’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의 중추이자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 시니어 세대에게 이 문제는 단순한 선택의 자유를 넘어선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자율성이라는 이름의 환상과 잠식 효과의 실체
조력 사망 찬성론자들이 내세우는 최대의 명분은 ‘자기 결정권’입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왜 문제냐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진정으로 독립적인 존재입니까? 스톡의 주장처럼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우리의 모든 결정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진 시기에 내리는 결정이 오로지 순수한 의지의 산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합법화를 먼저 시행한 국가들의 전례를 통해 잠식 효과의 무서움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도저히 손쓸 수 없는 말기 암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기준은 점차 느슨해졌습니다. 네덜란드와 캐나다 등지에서는 이제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 심지어는 ‘삶의 완성’을 이유로 죽음을 돕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생명을 끊는 행위에 대한 법적 빗장이 한 번 풀리면, 그 대상과 범위는 사회적 편의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부담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칼날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경제적 논리가 생명 윤리를 압도하기 시작할 때 발생합니다. 바론 워녹이 언급했던 것처럼, 치매나 만성 질환을 앓는 시니어가 스스로를 가족이나 국가에 ‘짐’이 된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조력 사망은 선택이 아닌 ‘강요된 퇴장’이 됩니다.
보수적 가치관에서 볼 때, 가족은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끝까지 곁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러나 조력 사망이 제도화되면, 시니어들은 자녀들의 경제적 부담이나 간병의 수고를 덜어주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시니어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회적 비용의 관점에서 축출하는 잔인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생명을 포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공동체의 돌봄 의무를 저버리는 비겁한 회피에 불과합니다.
공동체의 연대와 완화 의료의 본질적 강화
우리는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라는 존 던(John Donne)의 경구를 다시금 되새겨야 합니다. 시니어 한 분의 삶이 마무리되는 방식은 그 가정을 넘어 사회 전체의 생명 경시 풍조로 이어집니다.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인류애의 발현입니다.
정부와 사회가 진정으로 시니어의 존엄한 죽음을 돕고 싶다면, 조력 사망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 아니라 호스피스 및 완화 의료 시스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우선해야 합니다. 통증을 조절하고, 심리적 안정을 도우며,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예우를 다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국가의 본분입니다. 생명을 끝내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견뎌줄 손길을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비입니다.
생명의 가치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캐슬린 스톡의 논증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조력 사망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사회적 포기 선언입니다. 특히 우리 사회를 일궈온 시니어 세대에게 “당신은 더 이상 가치가 없으니 스스로 떠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하는 것은 문명 사회의 수치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선물로 여기며 그 존엄성을 끝까지 지켜내야 합니다. 비록 육체는 쇠락하고 고통이 찾아올지라도, 그 과정 또한 인간 삶의 숭고한 일부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효율성과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명의 보루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줄 가장 고귀한 유산입니다. 시니어 여러분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며, 우리 사회는 그분들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할 책임이 있습니다. 생명은 온전한 홀로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