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보다 통제의 길을 택한 나라
최근 영국 정부는 이민을 줄이겠다는 정치적 목표를 내세워, 외국인 유학생과 숙련 노동자에 대한 체류 규정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내무부가 자체적으로 산출한 분석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 정책으로 인해 영국은 향후 5년간 최대 44억 파운드(약 7조6,56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이민 규제 강화(immigration crackdown)’는 겉으로는 공정한 고용 기회를 지키기 위한 조치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경제 전반에 부담을 안기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학생 감소, 대학부터 흔들린다
이번 개혁의 핵심은 국제 유학생의 졸업 후 체류 기간을 2년에서 18개월로 단축하고, 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체류 기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영국의 대학들은 이미 재정의 상당 부분을 외국인 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내 학생 등록금이 정부의 상한 규제(연간 9,250파운드)로 묶여 있는 반면, 유학생 등록금은 두세 배 이상 높습니다. 예를 들어, 한 명의 석사 유학생이 지불하는 등록금이 3만 파운드(약 5,220만 원)에 달하기도 합니다. 이런 학생이 줄면 학교 재정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중하위권 대학들은 더욱 취약합니다. 내무부 자료에 따르면 세계 대학 순위 601~1,200위권에 속하는 영국 대학들의 유학생 비자 발급은 최근 2년간 49%나 늘어났지만, 상위 100위 대학은 오히려 7% 감소했습니다. 다시 말해, “지방대”와 “중간권 대학”이 외국인 학생으로 버티고 있는 구조입니다. 이런 대학들이 먼저 흔들릴 가능성이 큽니다.
노동당 정부의 정책이 ‘이민 억제’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다 해도, 그 대가로 영국의 고등교육 체계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숙련 노동자 규제는 산업 경쟁력에도 부담
이번 정책은 대학만이 아니라 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숙련 노동자 비자의 영어 요건이 강화되고, 기업이 해외 근로자를 고용할 때 내야 하는 ‘이민 기술자 부담금’이 3분의 1가량 인상될 예정입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은 이미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 출신 노동자의 이탈로 인력난이 심각해졌습니다. 농업, 의료, IT, 교육, 건설 등 다수의 분야에서 인력 부족이 지속되고 있는데,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이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무부의 평가에서도 “비자 수수료 수입 감소, 소득세 세입 감소, 소비 위축이 동반될 것”이라고 명시되었습니다. 단기적 정치적 득점은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 산업 경쟁력은 희생될 수 있습니다.
‘이민은 부담’이라는 정치적 프레임
영국 사회에서 이민은 오랫동안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1968년 이녹 파월의 ‘Rivers of Blood’ 연설 이후, 이민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스타머 총리 역시 “이민 유입이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과거의 공포 정치 수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민자들이 NHS(국민보건서비스) 부담금, 세금, 등록금 등을 통해 국가 재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단순히 ‘이민 = 부담’이라는 공식은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실제로 영국 재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이 내는 세금과 수수료는 해마다 약 250억 파운드(약 43조5,000억 원)에 달합니다.
즉, 영국의 이민정책은 “지출을 줄이는 정책이 아니라, 수입을 줄이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글로벌 인재 유출의 역설
이번 정책은 또 하나의 문제를 낳습니다. 바로 ‘브레인 리브(Brain Leave)’, 즉 인재 유출입니다.
영국은 오랫동안 세계 각국의 우수 인재를 유치하며 과학·예술·기술 혁신의 허브로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체류 요건이 까다로워지면, 같은 영어권 국가인 캐나다·호주·뉴질랜드가 그 인재들을 대신 데려갈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대학 졸업 후 최대 3년의 체류를 허용하고, 가족 동반도 쉽게 승인합니다. 호주는 ‘Graduate 485 비자’를 통해 4년 이상 체류할 수 있습니다.
반면 영국은 이제 “18개월 내 떠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국은 자국 대학이 양성한 고급 인재를 스스로 다른 나라로 내보내는 셈입니다. 이는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기반을 흔드는 일입니다.
시니어가 주목해야 할 ‘이민과 경제’의 교차점
시니어 세대에게 이 주제는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우리의 삶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영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며, 의료와 복지 재정이 점점 더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는 국가 재정의 균형을 흔들 수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노동력과 세금이 줄면, 결국 복지 지출의 지속가능성이 약화됩니다.
이민은 단지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력’과 ‘소비력’의 문제입니다. 60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5%를 넘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일손이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영국의 이민 억제 정책은 ‘경제적 자립’을 지키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장기적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통제보다 신뢰로 가야 할 길
물론 모든 나라는 국경을 관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미래의 성장 기반을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유학생과 숙련 인력은 단순한 ‘외국인 방문자’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를 함께 지탱하는 동반자입니다.
이번 내무부의 보고서가 시사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정치적 구호보다 데이터가 중요하다.”
감정적 통제 대신, 신뢰와 개방을 기반으로 한 정책이야말로 진정한 국가의 품격을 지키는 길일 것입니다.
노년층이 이 흐름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젊은 세대의 유입과 혁신이 줄어들면, 그 부담은 결국 우리 세대의 복지와 삶의 질로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민을 ‘위협’으로 볼 것인가, ‘기회’로 볼 것인가는 한 나라의 노년층이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민은 경제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지속을 위한 선택이다.” – 영국 내무부 영향평가 보고서 논평 중
이처럼 영국의 사례는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국가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인구 감소와 노동력 축소의 흐름 속에서, 이민은 단순한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노년의 안녕’을 결정짓는 경제적 변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