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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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財テク(ザイテク, ざいてく, 자이테쿠; 재테크, 투자기술)

많은 외국인들은 일본의 거대한 전전(戰前) 산업 재벌을 지칭하는 자이바쓰(zaibatsu, 財閥)—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菱), 스미토모(住友), 야스다(安田), 닛산(日産), 아사노(淺野), 후루카와(古河), 오쿠라(大倉), 나카지마(中島), 노무라(野村)—라는 단어에는 익숙합니다. 또한 전후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유력 산업인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 ‘자이카이(財界, ざいかい)’, 즉 ‘재계(財界)’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経団連, けいだんれん, 경단련; 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은 전통적으로 자이카이의 명목상 수장으로 간주되었으며, 흔히 비공식적으로 ‘재계 총리(財界総理, ざいかい そうり, 자이카이 소리)’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자이카이(財界, ざいかい)’의 권력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는 나가노현 가루이자와(軽井沢, かるいざわ)에서 열린 모임에 관한 뉴스 기사입니다. 당시 모임에 참석한 인사들의 부인들을 위해 준비된 이벤트 중 하나가, 값비싼 보석을 바구니에 담아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원하는 만큼 가져가도록 한 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자이카이 전성기인 1980년대 중반, 또 하나의 ‘자이(財)’ 용어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財テク(ザイテク, ざいてく, 자이테쿠; 재테크, 투자기술)’입니다. ‘자이(財, ザイ)’는 돈이나 재산을 뜻하며, ‘테쿠(テク)’는 영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약자인 ‘tech’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입니다. 두 단어가 합쳐진 ‘財テク(ザイテク, ざいてく, 자이테쿠; 재테크)’는 곧 주식이나 증권 투자 행위를 가리키게 되었는데, 이는 본래 기업이나 기관 투자자들에게만 허용되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1970~80년대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일반 기업과 개인들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자이테쿠(財テク, 재테크)에 뛰어든 계기는 1970년대 초반의 ‘오일 쇼크(石油危機, せきゆ きき, 세키유 키키)’였습니다. 당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많은 기업들은 주식과 증권 투자를 통해 얻은 이자와 배당금을 수익의 중요한 원천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말까지 기업들은 일본 내외에 투자 자회사를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토요타자동차(トヨタ自動車, Toyota Motor Corporation), 마쓰시타 전기산업(松下電器産業, まつした でんき さんぎょう, Matsushita Electric Industrial Co.) 등 일본의 주요 제조업체들은 주식과 채권 투자에 깊이 관여하게 되면서, 언론에서는 이들을 ‘토요타 은행’, ‘마쓰시타 은행’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일반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자이테쿠 열풍이 확산되었습니다. 수많은 샐러리맨들이 가계 저축을 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 일본의 버블 경제(バブル経済, ばぶる けいざい)가 붕괴되자, 일부 대형 증권사는 거대 기업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상해 주었는데, 그 금액은 수억 달러(약 수천억 원)에 달했습니다. 이런 ‘뒷거래(裏取引, うらとりひき)’가 대중에게 알려지자, 가계 저축을 잃은 일반 투자자들의 분노가 전국적으로 폭발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정부는 증권사를 더 엄격히 규제하는 법을 제정했고, 소규모 개인 자이테쿠 투자자들도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일본의 악명 높은 야쿠자(ヤクザ, やくざ) 조직들 역시 자이테쿠의 주요 참여자였으며, 자신들이 주식을 보유한 기업들로부터 ‘특별 자문료(特別相談料, とくべつ そうだんりょう)’를 갈취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자이테쿠(ザイテク, 재테크)’란 1970~80년대 일본 경제 성장기에 유행한 일본을 원조(元祖)로한 첨단 금융 투자 활동을 의미하며, 기업뿐 아니라 일반인과 범죄 조직까지 참여했던 사회적 현상이었습니다.

자본주들이 잉여자산을 통해 초과수익을 얻기 위한 노력에 ‘고도의 기술(High Tech)’가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대중’의 합류로 ‘투자’의 열풍이 불었던 일본의 경제상황을 판박이로 받아들여 우리나라에도 ‘재테크’ 광풍이 불어온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고도의 기술을 발휘하면 투자 수익을 높을 수 있을까요? 그 고도의 기술은 ‘연구’를 통해서 극복 가능한 것일까요? ‘테크(Tech)’라는 접미사를 붙인 일본인의 속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