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丼勘定(どんぶりかんじょう, 돈부리 칸조; Calculations in a Bucket)
일본의 사회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종종 일본인의 태도와 행동을 논할 때, 벼농사 문화와 씨족(部族)적 전통에서 기원을 찾는다고 설명합니다.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논에서 벼를 재배할 때 마을 전체가 관개 시스템을 함께 관리해야 했기에 협동심과 집단행동의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씨족 제도는 막부가 무너진 1868년까지 사회·정치적 단위로 존속하며 가족과 고용주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집단 외부에 대한 경쟁심을 강화시켰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수많은 영세 도소매 상점, 대부분 가족 경영의 가게들이었습니다. 이 미시적 상점들의 영향은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오늘날에도 일본의 소규모 상점에서 거대 기업 집단까지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2007년 스타트업에 뛰어들어 일본 회사와 합자회사를 만들어 신규 비즈니스를 진행할 때, 일본회사 CFO가 직원들에게 “丼勘定(どんぶりかんじょう, 돈부리 칸조)”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을 들었습니다. 저에게 “돈부리(どんぶり)”라는 단어는 “덮밥”이상의 의미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돈부리칸조”라는 이어진 단어가 귀에 들리게 되었고, 사전을 찾아보면서 본질적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돈부리(どんぶり)”는 음식을 담는 깊은 그릇이고, “칸조(勘定)”는 계산, 청구서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회사 내 여러 부서장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회사 전체 목표와 무관한 독립 상점처럼 운영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회계 부서가 상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의 “그릇”에 던져 넣듯 처리하여 회사가 왜 적자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 경우 “돈부리 칸조”는 곧 “대충 한데 묶어 계산하기” 정도로 번역됩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구멍가게 식으로 일하기’와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돈부리 칸조”는 대기업이 특정 고객에게 여러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어느 부서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따로 구분하지 않는 관행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사업부별도 손익을 따지면서, “돈부리 칸조”를 행하고 있으니, 성과평가가 공정할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육을 다녀온 직원도 성과급을 받고, 병가로 회사에 나오지 않은 직원도 땀흘려 밤샘을 거듭한 직원과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외국 기업이 불만을 갖는 부분은 서비스 비용이 별도로 청구되지 않고 제품 가격에 통합된다는 점입니다. 일본에서는 제품은 당연히 제대로 작동해야 하고, 사후 서비스는 무료이거나 포함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서비스 비용을 별도로 청구하는 것은 ‘비즈니스답지 않다’고 여깁니다. 이 같은 태도가 외국 기업을 종종 당황시키고 혼란스럽게 하며 때로는 불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런 “돈부리 칸조”로 일을 시키고, 성과를 독려하는 기업들이 허다한 것을 보면, 이 또한 일본의 잘못된 경영방식을 배워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친일’이니 ‘극일’이니 하면서 반기를 들었던 이들이 일본의 잘못된 경영방식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말입니다.
아직도 일본에선 국민학교 학생들중 상당수가 디지털 교육과 주산학원이 결합된 형태의 학원에 다니고 있고, 그 사업이 꾸준히 유지 확장 중에 있습니다. 물론 주산학원에 가는 것이 계산 능력을 키우기 보다는 왕성한 두뇌 활동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라고는 하지만, 통으로 대충 계산하는 비즈니스 세계를 목격하면서, 그 고도의 셈법은 다 어디에 써먹으려는 것인지? 일본인의 속마음에는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