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하 후세인(Taha Husayn)은 아랍인의 3,000년 역사 중 ‘재출현기(RE-EMERGENCE: 1800년–현재)’에 속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 중 한 명이며, 아랍 정체성의 문화적, 언어적 기반 자체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주요 인물의 맥락에서 논의됩니다.
1. 시대적 배경과 역할: ‘나흐다’ (Awakening)의 선구자
타하 후세인은 19세기 아랍 르네상스(알-나흐다, al-Nahdah)로 촉발된 지적 각성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는 아랍 세계가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유럽 제국주의의 침략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던 때였습니다.
- 배경 및 사상적 위치: 타하 후세인은 프랑스 유학 경험과 프랑스 여성과의 결혼으로 인해 유럽 문명과 깊이 접촉했으며, 이집트가 헬레니즘-유럽 문명을 재수용하고 “동양과 서양의 모든 문명화된 민족들의 영향”에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이중적인 시각: 그는 자신이 비록 육체적으로는 맹인이었으나, 학문적 탐구에서 ‘데카르트적 분리(Cartesian detachment)’를 통해 국적과 종교를 ‘잊어버리고’ 사실을 바라보는 태도가 “현대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믿었습니다.
2. ‘선이슬람 시’에 대한 비판과 그 파급 효과
타하 후세인의 가장 논란이 많고 영향력 있는 기여는 그의 1926년 저서 『선이슬람 시에 관하여(On Pre-Islamic Poetry)』에서 아랍 정체성의 언어적 기반을 이루는 핵심 텍스트를 공격했다는 점입니다.
- 공격의 핵심: 그는 “선이슬람 시라고 불리는 것의 압도적 다수”가 실제로는 선이슬람 시대의 것이 아니라 “이슬람 등장 이후에 날조되고 거짓으로 귀속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시를 전달한 초기 이슬람 전승자들이 속임수(Chattertons)였고, 고대 시인들은 날조된 인물들(Ossians)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 문화적 기반의 해체 시도: 이 선이슬람 시들은 언어적 우수성의 금본위(gold standard)이자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고대의 선불(downpayment)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엘긴 마블에 대고 쇠망치를 휘두르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시는 아랍 문화에서 “가장 궁극적인 문화 상품”이자 “조상들의 초상화”와 같았으므로, 그의 비판은 아랍 정체성의 문화적 토대 전체를 위협하는 행위였습니다.
- 다른 고대 기록들에 대한 질문: 그는 비판적 분리를 적용하여 꾸란의 타원형 텍스트에 점을 찍는 데 사용된 전통적인 고대 아랍 창세기의 이야기들, 예를 들어 아드(Ad) 부족이나 마립 댐(Marib Dam) 붕괴에 관한 전통적인 설명의 역사성을 조사했습니다.
- 아브라함/이스마일 논쟁: 그는 아랍 통일 정체성의 토대인 아브라함(Ibrahim)과 이스마일(Isma’il)의 역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는 “어떤 이교도나 다신론자도 감히 하지 못했던”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학자로서 이스마일의 존재를 ‘학문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무슬림으로서는 꾸란의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법정에서 진술하여 신앙과 이성 사이의 딜레마를 드러냈습니다.
3. 언어 및 통일의 맥락에서의 의미
타하 후세인의 작업은 아랍어의 역할과 통일이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근대적 지적 사고와 그로 인한 아랍 세계의 분열을 상징합니다.
- ‘데카르트적 분리’와 이성: 그의 작업은 ‘갈릴레오의 순간’에 비견될 수 있는*‘신앙 대 이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아랍 지성사에 재도입했습니다. 이는 수사학적 진리(rhetorical truth)와 경험적 사실(empirical fact) 사이의 영원한 딜레마를 다시금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 문화적 이중성(Dualism)의 관찰: 그는 “이원론(Dualism)은 모든 영역에서 아랍 존재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지적하며, 아랍 사회가 ‘이상적인 자아’를 고위 아랍어로 표현하는 반면, ‘더 낮은 도덕적 행동’은 구어체로 표현되는 등 언어적 이중 기준이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 통일의 환상에 대한 도전: 그는 범아랍적 단결(pan-Arab unity)이 신화적이라는 점을 깨닫고, 아랍 민족주의가 단지 “언어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비판은 정치적 통일의 실패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문화적 연대감의 기반을 재고하도록 만들었습니다.
- 지속적인 영향력: 비록 그의 책은 검열을 받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이 삭제되었으나, 그는 아랍 세계에서 “불을 훔친 자”(the Thief of Fire)로 기억되고 있으며, 후대 지식인들에게 근대적 비판 정신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타하 후세인은 아랍 정체성의 깊은 문화적 뿌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전통적인 사상과 근대적인 이성 사이의 긴장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낸 인물로서, 이후 아랍 세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격렬한 논쟁의 중심에 섰던 주요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