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0일
11-19-1800#116

– 和製英語 (わせいえいご, 와세이 에이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어식 표현, Made-in-japan English)

제가 일본에 출장과 파견 등을 통해 오랜 기간 일본에 거주하기도 하면서, 한 달 이상의 출장 때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일본어 선생님을 통해 일본어를 배웠습니다. 공부하고 잊어버리고 또 공부하기를 반복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자를 알고 있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일본인들과의 대화에서 정말 알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영어’였습니다. 일본어의 장벽을 또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자도 히라가나도 모르는 한 한국인 작업자는 “일본식으로 변형된 영어(Japanized English)”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일본 직원들과 아주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작업자의 영어는 “정상적인 영어”를 전혀 말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에게 대부분의 경우 의사 전달이 가능했습니다. 그가 일본인들과 상당히 원활히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어를 강한 일본식 억양으로 발음했기 때문인데, 바로 그것이 일본인들이 영어를 배운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일본식 영어만으로 생활해 보려고 다른 외국인들에게 이를 권장할 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본어 속에 흡수된 영어 단어들을 일본식으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배우고, 또한 일본식 변형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된 의미를 익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1945년 이후, 일본인들은 약 2,000년 전 처음 발생했던 현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즉, 외국에서 수천 개의 단어를 가져와 일본식으로 변형하여 일본어 속에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최초의 외래어 수입은 중국어였고, 이번에는 영어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1만 개가 넘는 영어 단어들이 ‘和製英語 (わせいえいご, 와세이 에이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어식 표현)’—즉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어(Made-in-Japan English)”—가 되었으며, 지금도 계속 새로운 단어들이 목록에 추가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이처럼 외국어 단어를 열렬히 받아들이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일본어 안에 해당 개념의 단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 다른 경우에는 사전에 일본어 대응어가 있더라도 영어의 뉘앙스와 용법이 일본어 대응어와 충분히 달라서 새로운 단어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일본인들이 영어 단어나 구절을 가져다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결과 원래 영어와 너무 달라져서 영어 원어민은 일본어 단어로 배워야만 이해할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和製英語 (わせいえいご, 와세이 에이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어식 표현)는 신문, 비즈니스 잡지, 패션 잡지, 오락 잡지, 만화 등 대중매체를 통해 일본에 처음 소개됩니다. 광고 회사와 일반 기업들도 ‘和製英語 (わせいえいご, 와세이 에이고)’를 만들어내는 주요 집단이며, 특히 일본인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세련됨·외국 분위기·로맨스·행복감을 암시하도록 단어에 새로운 뉘앙스를 부여하는 표현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정말로 매력적이고 유용한 표현이라면 순식간에 유행하여 매년 발표되는 신어 목록에 포함됩니다.

사실 제가 和製英語 (わせいえいご, 와세이 에이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어식 표현)로 인해서 가장 당황했던 기억은 1996년 10월 경입니다. 증권회사에 근무하던 저는 미국과 일본에서 증권전문가과정(펀드매니저 양성과정)을 공부하던 중 다이와증권총합연구소에서 공부할 때입니다. 퇴근 후 숙소 가까이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를 주문하면서 겪은 일입니다.

저는 교과서에서 배운 일본어로 “커피 한 잔 주세요. 暖かいCoffeeを一杯ください。(아타타카이 커피 잇빠이 쿠다사이)”를 책 읽듯이 발음했습니다. 대답은  “우리 가게에서는 커피를 팔지 않습니다. 当店ではCoffeeを売りません。(토덴데 와 커피 오 우리마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메뉴판이 걸려있는 벽을 가리키면서 “저것은 커피가 아닌가요? それはCoffeeではありませんか?(소래 와 커피데 와 아리마센 카?)” 물었습니다. 주인장은 메뉴에 있는 커피 이미지를 손으로 짚어가면서 “이것은 커피가 아닙니다.”これはCoffeeではありません。(고래와 커피데 와 아리마센)”하는 것입니다. 단호한 주인장의 대답에 짧은 일본어로 대항할 수 없어서 편의점에 들러 캔커피를 사 마셨습니다.

다음날 다이와증권총합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통역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퇴근길에 커피집에 들렀다가 커피를 마시지 못한 얘기를 전했습니다. 그 직원은 박장대소를 하면서 저에게 주문한 발음을 다시 해보라고 청했습니다. 저는 교과서 발음대로 “커피 한 잔 주세요. 暖かいCoffeeを一杯ください。(아타타카이 커피 잇빠이 쿠다사이)”를 책 읽듯이 발음했습니다. 그 직원은 저에게 발음을 교정해 주었습니다. “暖かいコーヒーを一杯ください。(아타타카이 코히 잇빠이 쿠다사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커피 만드는 것을 장인처럼 생각하는 커피전문가들이 많은 일본에서는 ‘Coffee(커피)’와 ‘コーヒー(코-히-, 일본식 영어)’를 발음으로만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음료라고 자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어제 숙소 근처의 커피집에서 파는 음료는 제 발음도 ‘Coffee(커피)’로 틀렸지만, 음료도 ‘コーヒー’로 그의 자존심에 부합하지 않은 대답이었던 셈입니다.

다음날 퇴근 길에 다시 그 커피집에 들러서 ‘코-히-(コーヒー)’를 주문했습니다. “暖かいコーヒーを一杯ください。(아타타카이 코-히- 잇빠이 쿠다사이)”하니까, 어제 그 주인장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코-히-콩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일본 내 외국인 사회를 당황하게 했던 와세이 에이고의 한 사례를 기억합니다. 도쿄 신바시 다이이치 호텔 별관에 있던 중국 음식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뷔페 형태를 도입하며 이를 “바이킹(baikingu)”이라고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스웨덴식으로 긴 테이블에 다양한 음식을 늘어놓는 방식에 착안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 방식은 특히 호텔 업계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손님들은 일정 금액만 내면 접시에 음식을 원하는 만큼 다시 담아갈 수 있었고, 결국 “바이킹”은 일본인 모두가 아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와세이 에이고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パソコン(파소콘): personal computer
エアコン(에아콘): air conditioner
スーパー(스-파-): 슈퍼마켓(편의점보다 큰 매장을 의미; 또한 영화의 자막(superimpose) 의미로도 사용됨)
レベルアップ(레베루 아푸): level up
フロント(프론토): 호텔 프런트 데스크
フリーター(프리-타-): freelancer(정규직이 아닌 여러 회사에서 단기 일을 하는 사람; ‘freelance writer’에서 유래)
サラリーマン(살라리-만, salaryman) : 일본에서 만들어진 표현으로, 영어권에서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コンセント(콘센토, concent) : 일본에서는 ‘전기 콘센트’를 뜻하지만, 영어의 ‘consent(동의)’와는 무관합니다.
ベビーカー(베비-카-,baby car) : 영어에서는 stroller, pram 등을 사용함.
マンション(만숀,mansion) : 일본에서는 ‘중·고급 아파트’ 의미이며, 영어의 mansion(대저택)과 다름.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외국인은 상표명이나 슬로건을 일본 시장에 사용할 때, 그것이 영어 번역이든 영어의 일본식 음역이든 반드시 일본어 의미가 정확하고 안전한지 꼼꼼히 점검할 것이 권장됩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지만 ‘일본식 영어’로 소통하던 작업자의 반문이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어가 서툴러도 잘 한다고 격려하지만) 일본어가 서툴면 무시하는 경향이 심해서, 일본식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편했지요”라고 하는 주장이었습니다. 저도 이점에 대해서 절대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발음은 완벽할까요? 자문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