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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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랭커셔 지역에서 벌어진 요양원 폐쇄 논란은, 비단 그곳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세계 대부분의 고령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이며, 한국 사회 역시 결코 예외가 아닙니다. 영국의 사례 속에는 우리가 깊이 들여다봐야 할 질문들이 숨어 있습니다. “노인의 삶을 결정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재정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변하는가?”, “노년기 공동체는 무엇을 통해 유지되는가?”라는 물음들입니다.

기사 속 주인공인 마조리 애스프던과 도로시 디버록스는 각각 95세, 92세입니다. 이들은 요양원을 단순한 ‘돌봄 시설’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에서 바라보던 숲, 함께 식사하던 친구들, 서로의 안부를 챙기던 작은 공동체가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요양원은 수십 년의 삶을 이어주는 연장선이었고, 마지막 안정과 평온을 누리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방정부는 재정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이 요양원을 폐쇄하고 더 큰 민간시설로 이주시키겠다고 합니다.

이때 갈등의 본질은 분명해집니다. 국가나 지방정부의 ‘효율’과 노인 개인의 ‘삶의 연속성’이 충돌하는 문제라는 점입니다. 요양원 거주 노인의 다수는 환경 변화에 취약합니다. 익숙한 객체, 익숙한 사람, 익숙한 시간표가 무너지면 심리적 불안과 신체적 건강 저하가 급격히 나타납니다. 기사 속 도로시는 “혼자 밥 먹던 시절을 이겨내고 이제 식당에서 함께 먹으며 친구도 생겼다”고 말합니다. 이런 변화는 노인의 회복력(resilience)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줍니다. 작은 전환도 큰 충격이 되고, 한 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나이가 바로 노년기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도로시의 아들 사이먼이 “그들은 돈 이야기만 한다. 인간적 비용은 고려되지 않았다”고 말한 대목입니다. 사실 이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요양병원·요양시설 재정 문제, 병상 조정 정책, 국민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조치 등은 늘 ‘효율’이라는 단어와 묶여 있습니다. 그러나 효율을 위한 결정이 노인의 존엄과 안정성을 해치기 시작한다면, 그 효율은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옵니다.

노인의 요양환경은 의료·요양 공공정책의 한 축이지만, 동시에 복잡한 감정과 인간관계의 마지막 무대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직원, 요양원 친구들, 주변의 익숙한 풍경은 돈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이는 하나의 ‘마을 공동체’를 이루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요양원 이전이 단순한 이사가 될 수 없다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사 속 가족들은 지방정부나 요양원으로부터 공식적인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충격을 주며, 돌봄의 안정성을 해칩니다. 한국에서도 종종 요양병원 폐업, 요양원 변경, 장기요양 등급 조정 과정이 충분한 설명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노인과 가족의 불안을 증폭시킵니다. 중요한 것은 절차 자체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입니다.

이 글에서 우리가 가장 깊이 새겨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요양원은 누구의 공간인가?”

정부나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노인의 남은 생을 지지하는 마지막 공동체이며, 그들의 감정·관계·기억이 쌓여 있는 ‘삶의 장소’입니다.

지방정부 의원 그레이엄 달턴은 “요양원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익숙함·안전·연결의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한국의 요양시설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시니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속성, 즉 삶의 흐름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적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감정적 회복이 어려운 나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 사례는 한국 사회에 다음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첫째, 노인의 거주 결정은 반드시 ‘당사자의 선택권’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둘째, 행정 효율은 인간 존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셋째, 요양시설은 단순한 서비스 제공 기관이 아니라 노인의 사회적·정서적 공동체입니다.

랭커셔 주민들은 기도하듯 말합니다. “이곳의 평온함이 깨지지 않기를.”

우리에게도 필요한 마음입니다. 노인의 삶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야 하는 것은 존엄과 안정입니다. 정책의 방향이 어디로 가든, 이 원칙만큼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