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반자 돌봄’이 가로막히는 이유를 묻다
노인을 돌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어려움이 개인의 체력이나 가족애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제도의 방향성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제기된 ‘동반자 돌봄(companion care)’ 논쟁은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고령화는 이미 예고된 미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에 대한 준비는 늘 뒤늦게 이루어졌습니다. 의료 서비스와 요양시설 중심의 정책은 외형적으로는 체계적이지만, 실제 생활 현장에서 필요한 돌봄과는 간극이 큽니다. 많은 고령자는 병원 치료보다도 누군가와 함께 장을 보고, 약을 챙기고,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적 지원을 더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 돌봄’은 제도 안에서 늘 주변부로 밀려나 왔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비용 구조입니다
시설 돌봄은 국가 재정과 개인 부담 모두에서 매우 비쌉니다. 반면 가정 내 돌봄은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정책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아 가족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가정 내 돌봄 비용은 이미 많은 중산층 가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장기요양보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시간이 부족한 돌봄’, ‘사람이 없는 돌봄’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동반자 돌봄’이라는 개념입니다
이는 의료 행위나 전문 간호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함께해 주는 돌봄을 의미합니다. 말벗이 되어 주고, 외출을 돕고, 고립을 막아 주는 역할입니다. 고령자에게 이 기능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정신 건강과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이를 노동 규제의 틀로만 바라보며, 비용과 책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사례에서 보듯, 동반자 돌봄에까지 초과근무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자 많은 돌봄 제공자들이 제도권을 떠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고령자와 가족은 더 비싼 비용을 감수하거나, 관리되지 않는 비공식 돌봄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도의 ‘선의’가 현장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대목에서 시니어 세대가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히 “지원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이 아닙니다. 어떤 돌봄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모든 돌봄을 의료화하고, 모든 지원을 규제와 비용으로 관리하려는 접근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세대 간 주거 모델은 하나의 대안적 상상력을 보여 줍니다
젊은 세대가 고령자와 함께 거주하며 일상적 돌봄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주거 비용을 낮추는 방식입니다. 이는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과거 공동체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형태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모델이 오늘날의 법과 규제 안에서는 ‘예외’나 ‘위험 요소’로 취급된다는 점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선택지입니다. 시설이든, 가정이든, 공동 주거든 자신에게 맞는 돌봄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는 선택을 넓히기보다는 특정 모델로 몰아가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 결과, 비용은 증가하고 만족도는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노인 돌봄은 더 많은 예산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규제의 방향을 점검하고, 민간과 공동체의 자발적 돌봄을 제도 안으로 포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돌봄을 ‘관리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해법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고령화 사회는 이미 도래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삶의 현장을 이해하는 정책과 제도입니다. 노인을 돌보는 일이 힘든 사회가 아니라, 돌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지금이 바로 그 방향을 다시 묻는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