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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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영재’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습니다. 머리가 비상하고, 이해력이 빠르며, 남보다 한 걸음 앞선 학생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부모들은 자녀가 ‘영재 판정’을 받으면 대견해하고, 학교는 그들에게 더 많은 교육 자원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여러 주(州)에서는 이 단어가 점점 더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재’로 불리는 아이들이 실제로는 ‘특권층의 아이들’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영재’는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미국의 대도시에서 교외에 이르기까지, 영재 프로그램은 교육 시스템 안에서 오랫동안 ‘성공의 관문’처럼 여겨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재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상급학교 진학 시 우선권을 얻고, 나중에는 대학 입학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냉정합니다.

같은 시험 성적을 받은 두 학생이 있을 때, 부유한 가정의 아이가 영재 프로그램에 선발될 가능성은 빈곤 가정의 아이보다 두 배 이상 높습니다.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출발선의 차이가 결과를 갈라놓는 것이지요.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시 같은 대형 교육구에서는 “모든 아이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의 민원이 끊이지 않습니다. ‘영재반’이 아니라 ‘기회반’이라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권의 이름으로 불리는 영재’

한때 미국 사회에서 영재반은 ‘꿈의 교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중산층 백인 가정의 자녀들이 주로 들어가게 되면서, 흑인·라틴계·저소득층 아이들이 배제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현실과도 닮아 있습니다. 사교육이나 조기유학을 통해 경쟁력을 쌓은 아이들이 입시와 영재 프로그램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이 제도가 본래 의도했던 ‘잠재력 발견’보다는 이미 기회를 가진 아이들을 다시 선택하는 구조로 변질되었다는 점입니다. 재능이 아니라 환경이 영재를 만든 셈입니다.

따라서 ‘영재 교육’이라는 말은 더 이상 ‘공정한 교육’을 뜻하지 않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선별이 아니라 확장이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주의 한 대형 공립학교는 ‘영재(gifted)’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대신 ‘고급 학습자(advanced learner)’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명칭의 변화가 아닙니다.

누가 ‘타고난 천재’인가를 가르는 대신, 모든 아이가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교육 철학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워싱턴 D.C.에서는 ‘영재반’이라는 단일 트랙을 없애고, 대신 수학·과학·언어 등 특정 과목별로 심화 수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비용이 더 들지만, 다양한 학생이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할 기회를 얻습니다.

누구에게나 잠재력은 존재하되,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지요.

시니어 세대에게 던지는 메시지

이 이야기는 단지 어린이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60~70대의 시니어 세대 역시 한때는 ‘시험’과 ‘경쟁’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그 과정에서 “능력 중심 사회”라는 말이 정당화되었지만, 실제로는 기회의 불평등이 세대를 넘어 재생산되었습니다.

오늘의 노년층 중에도 “어릴 적 집이 가난해서 대학을 못 갔다”는 회한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영재 논쟁은 결국, 그때와 똑같은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재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재능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

시니어 세대는 인생을 돌아보며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재능은 단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배움과 기회의 축적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말이지요.

따라서 후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조기 선발이 아니라, 늦게 피는 꽃도 존중하는 교육입니다.

‘영재’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

영재 교육을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영재’를 조기 선발의 기준으로만 보지 말고, 평생학습의 관점에서 재정의하자는 것입니다. 특히 AI 시대를 맞은 지금, 지식의 습득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력, 협업, 창의성입니다.

이것은 태어나면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환경, 교육,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미국의 일부 학군에서는 영재 프로그램을 혁신해, 문제 해결 능력과 협동적 사고력을 평가 기준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영재반의 인종적 구성과 사회경제적 다양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선발’에서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입니다.

결론: 진짜 영재는 늦게 핀다

한국 사회 역시 ‘조기 경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재교육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소수 특권층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노년층의 삶이 보여주듯, 인생의 성장은 언제나 두 번째 기회, 혹은 세 번째 기회에서 일어납니다. 재능을 가르는 일보다, 누구나 스스로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교육의 역할입니다.

‘영재’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것은 시험 점수나 IQ가 아니라,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의지와 끈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영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