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숙한 남성으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2025년의 오늘,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는 ‘소년 위기(Boy Crisis)’입니다. 미국에서는 젊은 남성들의 극단적 선택이 2010년 이후 3분의 1이나 증가하였고, 대학 학위 취득률은 여성에 비해 크게 뒤처지고 있습니다. 20대 초반 남성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일자리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사실상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는 1990년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단순히 학업 성취나 취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연결의 단절, 인간관계의 위축, 공동체와의 분리라는 본질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년 위기’는 사실 100여 년 전에도 이미 미국 사회가 겪었던 ‘소년 문제(Boy Problem)’와 유사한 양상을 보입니다. 20세기 초반, 산업화와 도시화, 이민과 불평등의 확대 속에서 미국의 도시에는 무단결석자, 길거리에서 빈둥거리며 소란을 일으키는 소년, 갱단에 휘말리는 소년들이 넘쳐났습니다. 부모는 과로와 언어 장벽, 생활고 때문에 자녀를 돌볼 여력이 없었고, 지역사회 유대도 무너졌습니다. 결국 아이들은 또래 집단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형성된 문화는 ‘강인함’과 ‘공격성’만을 숭배하는 비행 집단문화였습니다.
이때 시민사회는 놀라운 속도로 대응했습니다. 빅 브라더스(1904), 연합소년클럽(1906), 보이스카우트(1910), 걸스카우트(1912), 4-H(1912) 같은 단체들이 속속 설립되었습니다. YMCA는 이미 존재했지만, 1900년에는 전국 캠페인을 통해 “모든 남성과 소년에게 수영을 가르치자”는 목표를 내세우며 확대되었습니다. 농구라는 스포츠도 이 시기에 사회 개혁가 제임스 네이스미스에 의해 창안되었습니다. 소년들을 위한 여름 캠프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멘토, 특히 남성 멘토가 있었습니다. 스카우트 대장, 코치, 목사, 빅 브라더스 같은 어른들이 소년들에게 성숙한 남성으로 성장할 길을 안내했던 것입니다.
100여 년 전의 교훈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무엇을 시사할까요?
첫째, 사회적 연결망의 회복이 절실합니다. 오늘날 소년과 젊은 남성들은 공동체와 단절된 채 고립되고 있습니다. 15세에서 34세 남성 중 25%가 하루 동안 심한 외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7명 중 1명은 절친한 친구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자본의 붕괴라는 구조적 문제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한 세기 전에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 것은 법과 제도 못지않게 지역 사회의 손길, 즉 시민사회의 에너지였다는 점입니다.
둘째, 남성 중심 기관의 필요성을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날 소년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많은 단체들은 성별 통합을 이유로 남성 중심성을 잃었습니다. YMCA는 여성 중심 기관으로 성격이 바뀌었고, 보이스카우트는 ‘스카우팅 아메리카’로 재편되며 성별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소년들만의 공간, 남성 롤모델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여성 중심의 YWCA, 걸스카우트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물론 성평등과 포용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남성 청소년이 성숙한 남성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남성 멘토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셋째, 멘토 부족 문제가 심각합니다. 빅 브라더스 빅 시스터스에서는 소년 대기자가 소녀의 두 배이며, 멘토를 얻기 위해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멘토링은 대학 진학률을 10% 높이는 효과가 있음이 입증되었는데, 이 격차는 결국 삶의 기회 격차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남성 자원봉사자들은 “잠재적 가해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참여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와 보이스카우트의 성추문 사건은 이러한 불안을 더욱 키웠습니다. 실제로 보이스카우트는 약 70억 달러(약 9조4천억 원)에 달하는 배상 합의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성 자원봉사 참여는 더 줄어들었고, 소년들은 더욱 고립되었습니다.
넷째, 스포츠와 여가 활동의 약화도 주목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체육관, 놀이터, 야외 캠프 같은 공간이 소년들에게 구조와 멘토십, 동료애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고등학생 남성의 스포츠 참여율은 10년 사이 50%에서 41%로 떨어졌고, 저소득층 소년은 25%에 불과합니다. 경기 참여 비용과 여행팀의 상업화, 남성 코치 부족이 원인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저소득층 아이들이 방과후 스포츠 활동에서 소외되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운동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사회적 발달과 정체성 형성에 치명적 영향을 줍니다.
다섯째, 정책과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캘리포니아의 개빈 뉴섬 주지사, 미시간의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 유타의 스펜서 콕스 주지사, 메릴랜드의 웨스 무어 주지사는 이미 남성과 소년들을 위한 특별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남성 교사 확대, 견습 기회 제공, 아버지를 위한 유급 휴가, 남성 친화적 정신건강 서비스 등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20세기 초반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변화의 동력은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새로운 단체의 설립에서 나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시니어 세대가 이 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월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지혜, 그리고 후세를 위한 책임 의식은 청년 세대에게 가장 절실한 자원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디지털 공간에서 수많은 ‘가짜 롤모델’을 만나고 있습니다. 극단적 남성주의를 조장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속 왜곡된 성공 모델들은 고립된 소년들에게 매혹적으로 다가갑니다. 이런 때일수록 지역 사회에서 시니어 남성들이 멘토로 나서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보입니다. 대학 진학률의 성별 격차, 남성 청년의 사회적 고립, 높은 자살률, 낮은 결혼률과 출산율은 단순히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위기의 신호입니다. ‘소년 위기’는 곧 ‘사회 위기’로 이어집니다. 젊은 남성이 사회와 연결되지 못할 때, 그것은 곧 공동체 전체의 균열로 이어집니다.
한 세기 전, 미국 사회는 소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수많은 새로운 단체와 제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른 남성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이 교훈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소년과 남성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입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에는 반드시 남성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시니어 세대가 다음 세대의 멘토, 코치, 조언자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것이 곧 우리가 후세에 남길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