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紋(もん, Mon, 문, 문장, Wearing Company Colors)
일본의 독특한 풍습 중 하나는 회사원이 회사의 라펠 핀(lapel pin) 또는 배지(badge)를 착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습 덕분에, 일본에서는 거리에서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 라펠 핀을 착용하는 관습은, 일본의 헤이안 시대(794~1185) 후반기에 생겨난 ‘몬(紋, mon)’, 즉 가문의 문장(family crest) 사용의 현대적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귀족 가문들이 처음 자신의 수레에 식별용 ‘표식(mark)’을 붙이던 것이 점차 가문의 문장(家紋)으로 발전하였으며, 이후 이 문장은 그들의 기모노, 깃발, 대문, 사찰 및 기타 재산에도 새겨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마지막 대규모 막부 왕조 시대(1603~1868) 중반에 이르러, 일본 전역에서 12,000개 이상의 ‘문장(紋, もん, 몬)’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황제, 황실 귀족, 쇼군, 지방 영주뿐 아니라 상인, 농민까지도 자신만의 문장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가문과 씨족의 문장은 일본의 무사 봉건시대(1185~1868) 동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병사, 가신, 전령 등이 전쟁 중이거나 도시와 시골을 이동할 때, 자신이 어느 쇼군가 혹은 어느 씨족에 속하는지를 식별하는 데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각 씨족과 명문가의 명예, 위신, 권력은 모두 그들의 문장(紋, もん, 몬)에 담겨 있었습니다.
황제의 문장은 사실상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졌고,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은 권력의 상징으로서 너무나 영향력이 커서, 막부의 법을 어기고 체포된 흉악범들조차 그 문장이 눈앞에 나타나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굴복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에도 몬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는 미쓰비시, 미쓰이, 미쓰코시 백화점, 그리고 여러 사케 양조장과 같은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들의 상징으로 주로 사용됩니다.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약 700개의 문장(紋, もん, 몬)이 상업적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수만 개의 기업 로고가 역사적 문장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문장과 동일한 상징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과거의 가문 문장과 오늘날의 기업 엠블럼의 가장 큰 차이는, 오늘날의 엠블럼은 주로 남성 직원들이 정장의 옷깃에 핀 형태로 착용한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봉건시대에 문장이 신분의 식별과 보호의 역할을 했던 것처럼, 현대의 회사 라펠 핀은 일본의 엘리트 직장인들에게 개인적 상징이자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존재이며, 또한 그들이 소속된 조직의 구심점이 되는 가시적 표식이기도 합니다.
회사의 상징은 일본인들을 특정 그룹에 결속시키는 문화적 접착제(cultural adhesive)의 일부입니다. 회사 로고는 그들을 고무시키고, 임무 이상의 헌신을 하도록 영감을 주는 존재입니다.
공공장소에서 회사 배지를 눈에 띄게 정장 라펠에 달고 있는 일본 직장인들은, 자신의 외모와 행동이 곧 회사의 이미지와 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매우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부적절한 행동이 자신의 경력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용주는 반드시 이를 기록에 남기며, 이는 인사기록에 영구적인 불명예(mark)로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내 대부분의 대형 외국계 기업들도 이러한 라펠 핀의 역할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를 직원 및 대외 홍보(공보) 활동의 일환으로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직원들에게 제공합니다.
규모나 업종에 상관없이, 일본 내 모든 외국계 기업들이 이러한 관습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일본에 있는 한 총합연구소로 연수 출장을 갔을 때, 공항에 내리자마자 선배들이 뱃지 착용을 확인하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우리는 비록 배우러 왔지만, 결코 기죽지 말아라. 그리고 이 뱃지를 달고 있는만큼 비난 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각자가 우리 회사를 대표하니까!”
일본인들도 이와 유사한 마음으로 ‘문장(紋, もん, 몬)’을 다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해외 주요국의 회사 배지 착용 의무화 사례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원 직원들에게 당 배지 착용을 의무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는 배지 착용 의무 이행이 더욱 강조됩니다. 예를 들어 회계법인 EY 같은 곳에서는 공산당원 직원에게 배지 착용 지시가 내려지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2025년 10월 발표된 법령에 따라 건설 및 산업 현장 근로자에 대해 디지털 QR 코드가 포함된 신분증 배지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이 배지를 통해 안전 점검 및 외국인 근로자의 합법적 체류 여부 확인 등 기능을 수행하며, 미착용 시 벌금 또는 작업장 폐쇄 조치가 있어 엄격한 규제입니다. 2026년 대형 공공사업부터 단계적 전면 시행 예정입니다.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친환경 평가, 반부패 준수 등 기업의 ESG 관련 인증을 배지 형태로 표시하며, 협력사들에게 이러한 배지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로 기업의 평가 및 신뢰도 제고를 목적으로 하며, 법적 의무라기보다는 산업 표준이나 시장 요구에 해당됩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법률상 배지 착용 의무는 없으나, 일부 산업에서는 보안, 신원확인 목적으로 배지 착용을 일상적으로 관리하고 있고, 산업별, 회사별로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강하고,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재택근무 등의 영향으로 배지 정책도 유동적인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원들에게 뱃지(배지)를 착용시키는 회사의 정확한 숫자는 공식 통계로 알려진 바 없으나, 대기업(삼성, SK, 현대차, LG 등) 중심으로 주요 기업에서 과거에는 신입사원과 경력직에게 평균 2개 이상의 배지를 지급하였고, 특히 은행 등 일부 업종에서는 지금도 배지 착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지 착용을 강제하는 문화가 빠르게 줄고 평상시 배지를 착용하는 직장인은 대다수가 아닌 것으로 나타납니다.
가문의 문장(家門紋章)을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성씨ㆍ가문 수 또한 정확한 중앙집계는 없으나, 여러 자료에 따르면 ‘종문’ 또는 ‘문장’을 보유하고 있는 성씨가 수십~수백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어 강릉김씨, 진주정씨, 영월엄씨, 고령신씨, 여산송씨 등 다양한 지파 별로 독자 문장이 존재합니다. 저의 집안도 문장이 있는 집안입니다.
여기서 원조(原祖) 논쟁이 발생됩니다.
문장(紋章, coat of arms)은 중세 유럽, 특히 12세기 십자군 원정 시기에 전쟁터에서 갑옷과 투구로 얼굴이 가려진 기사들이 서로를 식별하기 위해 방패나 갑옷에 자신의 신분과 소속을 표시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이 시초입니다. 이후 문장은 가문, 단체,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 마크로 발전하여 문장학(heraldry)이라는 학문까지 등장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 문장이 왕족, 귀족, 기사 계급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사회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한편 일본에서도 독자적으로 가문을 나타내는 문장(가몬, 家紋)이 발달했는데, 이를 문장으로 번역하다 보니 용어적으로 동일하게 사용되지만 기원의 측면에서는 일본 가문 문장은 유럽 문장과는 별도로 발전한 것입니다. 일본의 가문 문장은 가마쿠라 시대(12~14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유럽과 일본에서 각각 발전한 독자적인 전통이 있는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저도 대학에 입학했을 때, 회사에 입사했을 때, 받았던 뱃지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자부심과 소속감 그리고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뱃지 또는 문장을 기억하거나 보관하고 계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