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7일
11-7-2200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 Allah Salih)는 아랍인의 3,000년 역사 중 ‘재출현기(RE-EMERGENCE: 1800년–현재)’에 활동한 주요 인물로서, 예멘의 오랜 분열과 통일의 순환, 그리고 현대 아랍 세계의 기술(정보) 시대에 부족주의와 독재 정권이 어떻게 생존하고 기능했는지를 보여주는 맥락에서 논의됩니다.

살레는 30년 넘게 북예멘 및 통일 예멘을 통치하며, 아랍 역사에서 반복되는 통치자의 ‘양면성’과 근대 국가 내에서 부족적 요소의 지속적인 영향력이라는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낸 인물입니다.

1. 통일과 분열의 순환 속에서의 역할

살레는 예멘이 1990년 통일된 이후에도 권력을 유지했으며, 이 과정에서 예멘의 복잡한 통일과 분열의 역사를 재현했습니다.

  • 통일 예멘의 지도자: 살레는 북예멘(Yemen Arab Republic, YAR)의 지도자였으며, 1990년 남예멘(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Yemen, PDRY)과의 통일 이후에도 통일 예멘 공화국(Republic of Yemen, RoY)의 지도자로서 군림했습니다.
  • 통일의 성공과 그 비용: 살레는 예멘 통일(1990년)의 성공을 이끌었지만, 이 통일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4년에 남예멘의 일부 세력이 분리 독립을 시도하는 짧은 ‘통일 전쟁'(‘War of Unity’)이 발생했으나, 살레는 이를 진압하고 연합을 유지했습니다.
  • 통치의 장기화와 악화: 살레는 30년 넘게 통치했으며, 집권 초기에는 비교적 온건한 독재를 행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불안정해지고 덜 온건하게 변모하는 독재자의 짧은 반감기를 보여주었습니다.

2. 기술 시대의 부족주의 통치(Demonarchy)

살레는 근대 국가의 형태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역사의 가장 오래된 특징 중 하나인 부족 연대(’asabiyyah)와 약탈적 경제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재현했습니다.

  • 부족적 정체성: 살레는 부족 출신 군인이었으며, “국가는 부족의 일부이고, 우리 예멘 국민은 부족의 집합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정착민(hadar)’과 ‘부족(qabilah)’이라는 아랍 사회의 근본적인 이분법적 구도에 어긋나는 발언으로, 근대 국가 내에서 부족적인 요소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 정치적 사유화 (Demonarchy):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국가 제도는 쇠퇴하고, 권력은 개인적인 충성심 네트워크를 통해 운영되었습니다. 그는 통치 기간 동안 300억 달러에서 62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부를 획득했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이는 현대 국가의 자원을 옛 부족 사회의 ‘습격 경제(raiding economy)’ 형태로 사유화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공정한 도둑”(sariq ’adil)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아랍 통치자의 양면적인 속성을 보여주는 현대적 예시입니다.
  • 군사화된 가족주의: 그는 자신의 아들 아흐마드(Ahmad)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아흐마드를 공화국 수비대장으로, 자신의 형제를 공군 책임자로 임명하는 등 군사력을 가족 중심으로 사유화했습니다. 이는 그가 부족 지도자의 명예를 상징하는 무장과 충성하는 측근을 통해 권력을 유지했음을 보여줍니다.
  • 새로운 아사비야의 이용: 살레의 통치는 부족적인 충성심과 부족 엘리트와의 비공식적인 유대 관계에 의존하며, **국가적 차원의 아사비야(’asabiyyah)**를 구축하는 대신 개인 중심의 충성심 웹(wala’-webs)을 형성했습니다.

3. ‘아랍의 봄’과 비극적인 결말

2011년 ‘아랍의 봄’은 살레 정권에 종지부를 찍는 듯했지만, 그의 이후 행보는 아랍 역사의 비극적 순환을 가장 극적으로 재현했습니다.

  • 권력 이양 후의 음모: 시위와 봉기 끝에 살레는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기소 면책을 보장받았지만, 망명 대신 예멘에 남아 복수를 획책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축출하려던 세력에 대한 복수심을 후티(Huthis) 반군과의 동맹을 통해 실행에 옮겼습니다 [515–516].
  • 오래된 적과의 연합: 후티는 살레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여섯 차례의 전쟁을 치렀던 시아파 분파(자이디야) 출신 무장 단체이자 하셰미 가문(Hashimi, 무함마드의 혈통)의 후손들이 주축이 된 집단이었습니다. 살레가 이전에 자신과 싸웠던 이들과 동맹을 맺은 것은 정치적 권력을 위한 목적이라면 동맹과 배신이 반복되는 아랍 역사 속의 오래된 패턴을 보여줍니다.
  • 최종적인 배신과 죽음: 이 ‘불가능한 연합’은 3년 만에 깨졌고, 살레는 2017년 후티 반군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뱀들의 머리 위에서 춤춘다”고 스스로 비유했던 통치 방식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결말이었습니다 [516, 529–530].

결론적으로, 알리 압둘라 살레는 현대의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부족과 파벌이 대립하고 외부 세력의 개입이 끊이지 않았던 예멘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부족 연대를 기반으로 한 독재자로 군림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기술과 언어의 시대에 부족주의가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아랍 역사에 만연한 통일의 취약성과 내부 분열의 지속성이라는 비극적인 순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