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따뜻한 기억인가, 차가운 알고리즘인가
최근 미국에서는 사랑하는 이의 삶을 기리고 추모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족 중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장례식장에서 추도사를 작성하거나, 목회자 또는 장례식 디렉터가 일정한 형식을 따르며 부고문을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인공지능(AI)이 이런 역할을 대신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ChatGPT 같은 대형 언어모델이 감성적 언어를 정리해 추모문을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는 소식은, 고령층인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집니다.
실제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한 미국인은 고인의 삶을 담담히 AI에게 들려준 후, 감동적인 추도문을 받아 장례식장에서 낭독했습니다. 그는 “내 마음을 그대로 읽은 듯한 글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처음엔 낯설고 기계적인 느낌일 것 같지만, AI가 생성한 문장은 때로는 고인에 대한 기억을 한 편의 시처럼 정제된 언어로 전달하기도 합니다.
기술의 손길로 추모를 시작하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편리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늘날 고령화 사회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많고, 장례를 준비할 시간과 감정적 여유도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AI는 고인의 이름, 생애, 특징, 가족관계 등을 바탕으로 5~10분 만에 한 편의 헌사를 작성해줍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속도와 효율성도 큰 장점입니다.
또한 AI는 고인이 좋아했던 활동, 반려동물과의 일화, 가족 간의 따뜻한 순간 등을 끌어내어 감동적인 언어로 엮어줍니다. 유족들이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기억되길 원했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공감의 매개체’가 됩니다.
하지만 과연 진심을 담을 수 있을까?
물론 이런 기술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기계가 과연 인간의 삶을 진정성 있게 요약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마지막 이야기를 복붙처럼 만들지는 않을까?”라는 의문은 당연히 제기됩니다. 실제로 일부 사용자들은 AI가 생성한 추모문이 너무 상투적이고, 마치 아무에게나 적용 가능한 형식적 글처럼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우리 세대는 손편지 한 장에도 마음을 담아 썼던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기리는 마지막 글은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고 믿는 이들도 많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진심은 인간만이 쓸 수 있다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만이 고인을 기릴 수 있는가?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했던 이를 제대로 추모할 수 없게 되는가? AI는 바로 그 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기술은 우리의 부족함을 대신 채워줄 수 있으며, 감정을 글로 풀어내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AI가 작성한 추도문에는 ‘진심’이 없을 수 있지만, 그것을 고른 사람의 선택에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사랑이 전달되느냐는 점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던지는 질문
이제 우리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내 생을 마친 후 남겨질 이야기를 누가, 어떻게 남길 것인가.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AI 도구를 통해 자신의 자서전이나 마지막 편지를 미리 써두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선 기술에 대한 이해와 어느 정도의 디지털 문해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죽음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이자,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작고 조용한 외침일 수 있습니다.
AI가 우리의 죽음을 대신 기록해주는 시대. 이것은 슬픈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따뜻한 이야기일까요? 아마도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술이 우리 삶에 다가올수록 ‘사람다움’이 더욱 소중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AI에게 글쓰기를 맡기더라도, 기억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