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남성상,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요즘 젊은 세대의 세상은 우리가 자라던 시절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들이 보는 세상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안에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세상을 배웁니다. 이 디지털 세상은 지구 반대편 사람의 이야기를 단 몇 초 만에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왜곡된 정보와 이미지가 빠르게 퍼져 나갑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한 기사는 이 현상을 “디지털 남성성(Digital Masculinity)”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소년들이 자라면서 ‘무엇이 남자다움인가’를 배우는 과정이 더 이상 가정이나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인터넷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다움’이 유튜브에서 배워지는 시대
Common Sense Media에서 발표한 이 연구에 따르면, 남학생들의 4분의 3 이상이 이러한 유형의 콘텐츠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며, 3분의 2 이상이 유해한 성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콘텐츠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는 미국의 10대 소년들을 대표하는 전국 규모의 표본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틱톡, 인스타그램, 스냅챗과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소년들의 경험을 조사했고, 이들이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감정적 웰빙, 정체성,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배우는 방식에 대한 질적 인터뷰도 포함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청소년 소년 10명 중 7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남성성’ 관련 콘텐츠를 접하고 있다고 합니다. 근육질 몸매, 빠른 차, 돈, 무기, 여성의 시선을 끄는 법… 이런 영상들은 마치 ‘진짜 남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듯한 말투로 접근합니다.
문제는 그 메시지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소년들의 정체성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한창 자신을 찾아가는 시기에 이런 자극적인 이미지가 쏟아지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왜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나는 왜 저런 삶을 살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을 파고드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압박입니다.
6분의 5에 달하는 남학생들은 이러한 종류의 콘텐츠에 대한 노출이 자신들이 ‘진정한’ 남자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강인하고, 근육질이며, 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여학생들보다 자신이 외모 관리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경쟁하며 ‘힘이 세면 인기 있는 아이’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디지털 세계가 그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몸, 돈, 여자, 영향력’이 남성성을 증명하는 주요한 지표로 작동합니다.
사라진 감정의 언어, 억눌린 공감의 시대
한편, 연구 결과는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온라인 남성성 콘텐츠를 자주 접한 소년일수록 외로움과 낮은 자존감을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영상의 문제를 넘어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울지 마라”, “남자가 왜 약한 소리를 하냐”는 말을 듣고 자라며 감정 표현을 억누릅니다. 그리고 SNS에서는 “강해야 한다”, “지배해야 한다”, “승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쏟아집니다. 결국 그들은 공감 능력을 잃고, 관계의 언어를 잃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면 ‘약한 남자’로 낙인찍히고, 침묵하면 ‘쿨한 남자’로 인정받는 구조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역설입니다. 감정이 사라진 세상에서, 소년들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플루언서가 ‘멘토’가 되는 세상
인터넷이 무서운 이유는 ‘누가 말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이 퍼지느냐’가 영향력을 결정한다는 데 있습니다. 요즘은 교사나 부모의 말보다 유튜브의 한 인플루언서가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소년들이 좋아하는 몇몇 유명 인플루언서들은 “진짜 남자라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자에게 지배당하지 말라”, “돈과 성공이 남자의 본질”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들의 영상은 화려한 그래픽과 빠른 템포의 음악, 성공한 듯한 연출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6분의 5에 달하는 남학생들은 이러한 종류의 콘텐츠에 대한 노출이 자신들이 ‘진정한’ 남자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강인하고, 근육질이며, 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여학생들보다 자신이 외모 관리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소년들은 무의식중에 그 이미지를 ‘성공의 모델’로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콘텐츠가 단순히 자기계발을 넘어, 여성 혐오나 사회적 불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조사에서는 10명 중 1명 이상이 여성혐오적 메시지를 자주 접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들은 이를 ‘재미’라고 말하지만, 웃으며 소비된 농담이 결국 사고방식이 되고 행동이 됩니다.
현실의 관계가 가진 힘
흥미로운 것은, 현실 속 관계가 튼튼한 소년일수록 이런 디지털 남성성에 덜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부모와 대화가 많고, 친구와 진심으로 연결된 아이들은 화면 속 세계보다 현실의 관계에서 정체성을 찾습니다. 부모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그런 영상 보면 안 돼!”라고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과 마주 앉아 있을 때, 남학생들은 친구들과 마주 앉아 있을 때보다 좌절감, 외로움, 그리고 우울감을 느낄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부모님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남학생들(79%)은 그렇지 않은 남학생들에 비해 자존감이 낮다고 보고할 가능성이 절반밖에 되지 않았으며, 디지털 남성성 콘텐츠에 많이 노출된 남학생들은 특히 부모님의 지지를 필요로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보고, 묻는 것입니다. “이 영상에서 말하는 남자다움은 어떤 의미일까?”,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이렇게 묻는 대화는 아이의 생각을 드러내게 하고, 그 안에서 비판적 사고가 자라납니다.
디지털 시대의 교육은 통제가 아니라 대화의 기술이 되어야 합니다. ‘어른의 훈계’보다 ‘함께 질문하는 친구 같은 태도’가 더 효과적입니다.
세대 간의 남성상, 그리고 우리 세대의 과제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는 남자다움이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가족을 지킨다”, “책임을 진다”, “눈물은 삼킨다.” 그 안에는 시대의 무게가 있었고, 동시에 따뜻한 책임감이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다릅니다. 소년들에게 요구되는 ‘남성상’은 감정 없는 강인함, 완벽한 외모, 그리고 경쟁에서의 승리입니다. 이 기준은 그들을 더 강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불안과 고립 속으로 밀어넣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남자다움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 세대에게도 유효합니다. 은퇴 후의 삶에서 ‘남성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일은, 이제 우리 세대의 몫이기도 합니다. 육체적 강인함 대신 관계의 따뜻함, 책임의 지속성, 삶의 겸허함이 새로운 남성다움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방향을 잃고 있을 때, 우리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세대입니다. 진짜 남자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에 대한 세대의 답변
이제 ‘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소년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시대, 감정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은 결국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소년들이 스마트폰 속 세계에서 길을 잃고 있다면,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현실의 세계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세대의 역할입니다.
남자는 더 이상 ‘울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울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그것이 바로 시대를 넘어 변하지 않는 진짜 남자다움입니다.
“무엇이 남자를 만드는가?” 그 답은 아마도 단순합니다. 힘이 아니라 공감, 지배가 아니라 존중, 외로움이 아니라 함께함이 우리를 진짜 인간으로 만드는 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