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7일
11-29-0600#188

스페인의 전설적 투우사로 불린 호세 안토니오 모란테 카마초(Morante de la Puebla).

그는 오랫동안 “가장 우아하고 예술적인 투우사”라는 명성과 함께, 투우계의 살아 있는 아이콘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의 중심에 서 있던 그는 최근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경기장을 조용히 떠났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 부상도, 은퇴할 나이가 되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상대는 더 이상 황소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술적 탈진”

모란테는 마지막 경기 직후 “예술적 탈진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투우사에게 ‘탈진’은 흔한 표현일 수 있지만, 그가 말한 탈진은 육체의 피로가 아니라 내면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투우는 스페인 사회에서 오랫동안 전통과 미학의 결정체로 여겨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우렁찬 환호를 보냈고, 지역 정치인들은 그의 어깨에 꽃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느끼고 있던 고통은 대중의 환호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해리증, 우울, 불안을 포함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고, 약물 치료·전기 치료·전문 상담 등을 반복하며 겨우 균형을 유지해 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떤 날은 링에 서는 것이 두렵고, 어떤 날은 자신이 자신 같지 않다는 느낌에 흔들렸습니다.

그가 투우를 떠난 이유는 명확합니다.

“추락하기 전에 멈추기로 결심했습니다.”

전성기 속에서 찾아온 ‘내면의 균열’

인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뜻밖의 순간에 불안과 고독을 경험합니다.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일수록, 그 고독은 오히려 더 깊어집니다.

모란테는 세비야 강가에 있는 고향집에서 인터뷰를 하며 말했습니다. “기량이 떨어진 듯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삶과 경력이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만 같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추락하기 전에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성취의 정점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이제는 더 이상 ‘이겨내는 척할 수 없다’는 솔직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으며 늘 자신감이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도 많습니다. 정상은 외롭고, 정점에 설수록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용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그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회상하며 했던 말입니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자기감 상실’ 혹은 ‘이인화(異人化) 경험’으로 표현되는데,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저게 나인가?”라는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눈물이 통제되지 않았고, 몸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장기간의 압박과 심리적 소진이 폭발할 때 나타나는 심각한 신호입니다.

시니어 독자에게 주는 함의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살펴볼 중요한 메시지는 단순히 한 투우사의 삶이 아니라, 중년 이후의 삶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내면의 균열과 그 극복의 방식입니다.

① 중년과 노년의 심리적 압박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옵니다

많은 시니어들이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 “성취의 기대에 맞추기 어렵다.”, “삶이 비어 보인다.” 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는 능력의 문제라기보다, 삶의 전환점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입니다.

모란테처럼 강렬한 삶을 살아온 사람조차 멈춰 서야 했습니다.

② 정신건강은 감추어야 할 약점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건강의 일부’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강해야 한다고 믿었고, 누구에게도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인정했습니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시니어에게도 정신건강 문제는 결코 낯선 주제가 아닙니다. 은퇴, 자녀 독립, 사회적 역할 감소, 건강 변화 등이 모두 심리적 불안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③ 멈추는 용기는,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전제조건입니다

모란테는 “은퇴”라는 단어조차 명확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완전한 종료라기보다, 휴식입니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쉼표”는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 쉼표는 실패가 아니라 회복과 재정비의 시간입니다.

투우를 떠났지만, 삶은 계속된다

모란테는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방향 없는 공백이 불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여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고향의 강가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 ‘내 마음의 링에서 싸우기’

투우장에 서는 것은 극도의 두려움과 직면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더 어려운 싸움은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일입니다.

시니어에게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줍니다.

오래 살아온 경험이 오히려 마음의 짐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체면보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신호를 듣는 일’입니다. 결정은 남이 대신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내가 위한 방향으로 다시 선택하는 것입니다.

약해 보여도 괜찮고,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그 자체가 지혜입니다.

“나는 이제 예술가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모란테는 떠나는 날, 수많은 젊은 팬들에 의해 어깨 위로 올려져 경기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즐겁다기보다 고통을 끝냈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나는 꿈을 이루었고, 이제는 그 꿈에서 나옵니다.”

그의 고백은 시니어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리 역시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과거의 역할과 기대에서 벗어나 ‘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은 늦은 나이에 이뤄지는 패배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