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청인을 위한 청각 보조 기술이 던지는 시니어 사회의 과제
우리는 점점 더 시끄러운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거리의 소음, 카페와 식당의 웅성거림,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소리들은 젊은 세대에게도 피로를 안겨 주지만, 노년층과 난청인에게는 일상의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듣지 못한다’는 문제는 단순히 귀의 기능 저하를 넘어, 대화 단절과 고립, 나아가 안전의 위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난청협회(HLAA)에 따르면, 미국 인구 7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약 5천만 명이 난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결코 특정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보편적 현실임을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날수록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잘 소통하며 사느냐’가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듣기의 문제는 곧 ‘관계의 문제’입니다
난청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지점은 인간관계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여러 번 되묻게 되고, 회의나 가족 모임에서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며, 결국 스스로 말을 아끼게 됩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시니어들이 “귀가 안 들려서 모임에 가기 싫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각 보조 기술은 단순한 의료 보조 수단을 넘어, 관계 회복과 사회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소통의 인프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각 루프 시스템, 디지털 변조(DM) 방식의 보조 기기, 적외선 시스템 등은 이미 극장과 회의실, 종교 시설 등에서 난청인의 참여를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듣는 기술’은 안전을 지키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특히 시니어에게 중요한 점은 안전입니다. 난청은 고주파 소리를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화재 경보기, 초인종, 기상 경보와 같은 중요한 신호를 놓칠 위험이 큽니다. 밤에 보청기나 인공와우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라면 이러한 위험은 더욱 커집니다.
최근에는 소리를 대신해 진동이나 빛으로 위험을 알려주는 경보 장치들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베개나 매트리스가 진동하거나, 조명이 점멸해 화재나 비상 상황을 알리는 방식입니다.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 역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며, 기술이 노년의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블루투스와 오라캐스트, ‘선택해서 듣는 시대’의 도래
청각 보조 기술의 미래는 ‘연결성’과 ‘선택권’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블루투스를 통해 보청기와 스마트폰을 연결해 통화나 방송을 직접 듣는 시대는 이미 열렸습니다. 앞으로 주목받는 기술은 ‘오라캐스트(Auracast)’입니다.
오라캐스트는 하나의 음원을 다수의 수신기로 동시에 전송할 수 있는 차세대 블루투스 기술입니다. 이 기술이 정착되면 공항의 안내 방송, 체육관이나 식당의 TV 소리 중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소리만 골라 자신의 보청기로 직접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난청인을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조정하는 ‘능동적 사용자’로 전환시키는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맞춤’과 ‘상담’입니다
다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난청의 유형과 정도, 주로 생활하는 공간과 활동 방식에 따라 필요한 기술은 달라집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확한 청력 진단과 전문 청각사와의 상담이 선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함이 커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노년의 삶에서 ‘잘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존엄의 문제이며, 동시에 안전과 직결된 생존의 문제입니다. 청각 보조 기술의 진화는 결국 우리 사회가 노년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척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