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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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세대가 바라본 ‘구술 평가’의 의미와 교육의 본질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상 깊숙이 스며든 오늘날, 교육 현장은 다시 한 번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물음입니다. 최근 미국 대학가에서 조용히 확산되고 있는 ‘구술 시험(oral exam)’의 부활은, 단순한 시험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되묻는 상징적 움직임으로 읽힙니다.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사례에 따르면, 일부 교수들은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과제와 에세이 전반을 대신 작성해 줄 수 있는 환경에서, 기존의 테이크홈 시험이나 서술형 과제가 더 이상 학습 성취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학생이 직접 말로 설명하고, 질문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며, 자신의 이해를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구술 평가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지 ‘AI를 피하기 위한 기술적 대응’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는 교육이 본래 지향해 왔던 핵심 가치, 즉 이해·사유·표현의 통합적 능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생각은 외주를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

기사에 등장하는 한 교수의 비유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헬스장에 지게차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 AI가 사고 과정을 대신 수행해 주는 상황에서, 학생은 편리함을 얻을 수 있지만 사고의 ‘근육’은 단련되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이는 오늘날 시니어 세대가 디지털 기술을 바라보며 자주 던지는 질문과도 닮아 있습니다. 기술은 삶을 돕기 위한 도구이지, 인간의 판단과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는 인식 말입니다.

구술 시험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하나의 답변입니다. 학생은 더 이상 완성된 문장을 제출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교수의 질문에 따라 생각을 확장하고, 근거를 제시하며, 때로는 자신의 이해가 부족한 지점도 드러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외주화된 사고’는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오래된 방식의 재발견

흥미로운 점은 구술 시험이 결코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 지식은 본래 말로 전수되고 말로 검증되었습니다. 18세기까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도 구술 평가는 핵심 평가 방식이었습니다.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는 지금까지도 이 전통이 이어져 왔습니다.

즉, AI 시대의 구술 시험은 ‘과거로의 후퇴’가 아니라, 기술 환경 변화 속에서 검증된 교육 방식을 다시 호출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팬데믹 시기 온라인 시험에서의 부정행위 우려, 그리고 이제는 AI 기반 도구와 웨어러블 기기까지 등장한 상황에서, 교육자들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장점과 함께 짚어야 할 한계

물론 구술 평가가 만능 해법은 아닙니다. 교수 1인당 소요 시간이 길고, 대규모 강의에서는 운영 부담이 큽니다. 말하기에 불안을 느끼는 학생, 언어 표현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공정성과 접근성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에 소개된 학생들의 반응은 주목할 만합니다.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AI를 쓸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정말 배운 것을 쓰게 되는 시험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집니다. 이는 평가 방식이 학습 태도와 동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시니어 세대가 이 흐름에서 읽을 수 있는 것

시니어 독자 입장에서 이 변화는 단순히 대학 교육의 문제가 아닙니다. 평생학습, 재취업 교육, 디지털 역량 교육 등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기술을 무조건 배제하거나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를 기술에 맡기고, 어디부터를 인간의 몫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구술 시험의 부활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빠르고 편리한 답보다, 서툴더라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이해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이는 교육뿐 아니라, 민주주의, 시민성, 그리고 노년기의 삶에서도 유효한 질문입니다.

AI가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해 주는 시대일수록, 인간이 직접 말하고 생각하며 책임지는 능력은 더욱 소중해질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시험 방식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그 사실을 다시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