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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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Retire)라는 단어는 본래 ‘물러나다’ 혹은 ‘조용히 사라지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산업화 시대에 은퇴는 평생을 바쳐 일한 노동자에 대한 훈장이자, 남은 생을 안락하게 쉬라는 사회적 배려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과연 30년, 아니 40년에 달하는 긴 시간을 단순히 ‘쉬는 것’만으로 보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과연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일까요?

최근 은퇴자들 사이에서 ‘매터링(Mattering)’, 즉 자신이 세상에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위로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연구 결과가 증명하듯, 자신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라고 느끼는 순간 인간은 급격히 무기력해지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쇠락합니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개인의 건강한 삶은 국가나 사회의 복지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낼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시니어의 품격은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내가 왕년에 부장이었는데”, “내가 젊었을 땐 말이야”라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진정한 품격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데서 나옵니다.

사회는 냉정합니다. 생산 활동에서 물러난 시니어를 잉여 인력으로 치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를 사회 탓으로만 돌리며 한탄하는 것은 성숙한 어른의 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거창한 사회적 성공을 다시 꿈꾸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 이웃, 지역 사회라는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맞벌이 자녀를 위해 손주를 돌보는 일, 동네의 안전을 위해 방범 활동을 하는 일, 혹은 평생 쌓아온 지혜를 젊은 세대에게 멘토링으로 나눠주는 일 등 우리 주변에는 시니어의 손길이 절실한 곳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니라, 사회적 자본으로서 시니어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서구의 ‘리페어 카페’ 사례나 자원봉사 활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을 때, 비로소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의존(Depended on)받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가장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익은 과일은 주변을 향기롭게 하고 누군가에게 귀한 양식이 됩니다. 은퇴 후의 삶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사회적 잉여가 아닌 사회적 자산으로 남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쓰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것이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시니어의 진정한 품격이자, 후배 세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어른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당장, 내 도움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당신의 두 번째 인생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