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명의(名醫)’를 떠올릴 때, 환자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아픈 곳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의사의 모습을 그립니다.
하지만 현대의 병원 풍경은 어떤가요? 차가운 진료실 공기 속에서 의사는 환자보다 모니터 화면을 더 오래 바라봅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대답을 시작하기도 전에, 의사의 손가락은 이미 키보드 위를 바쁘게 뛰어다닙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는데, 정작 진료실의 풍경은 점점 더 삭막해지기만 하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삭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그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다시 의사의 따뜻한 눈빛을 우리에게 돌려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의료 인공지능(AI)’ 이야기입니다.
최근 미국의 저명한 의학자인 로버트 와쳐 박사는 의사들이 더 이상 동료에게 묻지 않고 AI에게 자문을 구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으면 “감히 기계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에 끼어들다니” 하며 혀를 찰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우리가 평생 살아오며 쌓인 진료 기록은 웬만한 소설책 몇 권 분량을 훌쩍 넘깁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의사가 짧은 진료 시간에 그 많은 기록을 다 읽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AI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AI는 1초 만에 우리의 지난 30년 치 혈압 수치 변화와 복용했던 약의 종류, 그리고 혹시 모를 부작용 이력까지 훑어내어 의사에게 핵심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환자분은 과거에 이 약물에 과민 반응이 있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라고 옆에서 똑똑하게 조언해 주는 것입니다.
이 덕분에 의사는 서류 작업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우리 시니어 환자들의 주름진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여유를 되찾게 됩니다.
물론 어르신들 중에는 “기계가 나를 진단하는 건 믿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연하고도 타당한 우려입니다. 기계는 피도 눈물도 없으며,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직관과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와쳐 박사의 말처럼, AI는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의사다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유능한 비서입니다.
AI가 진료 기록을 받아 적고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맡는다면, 의사는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는, 기계가 절대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에 섣부른 기술 도입은 금물입니다. AI가 내놓는 결과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의사의 최종적인 판단은 필수적이며, 우리의 소중한 개인 정보가 안전하게 보호되는지에 대한 감시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 우리의 생명을 더 안전하게 지키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데 쓰인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과거에 청진기가 처음 나왔을 때도 의사들은 “귀를 직접 대지 않고 기계 따위에 의존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청진기 없는 의사를 상상할 수 있나요? 머지않은 미래에 AI는 의사의 목에 걸린 청진기처럼, 우리 시니어들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든든하고 필수적인 도구가 될 것입니다.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으로, 무조건적인 거부보다는 현명한 감시자로서 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면, 우리의 노후는 조금 더 건강하고 안락해질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더 인간적인 의료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희망이자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