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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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시니어들에게 고함: 청년의 눈물을 닦아줄 책임에 대하여

오랜 세월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안정된 직장과 행복한 미래가 보장된다.” 이것은 단순한 성공 공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해 온 사회적 계약이었습니다. 우리 시니어 세대는 이 믿음 하나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이 견고했던 믿음이 산산조각 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와 각종 경제 지표들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대졸자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경기가 좋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기술적 파도가 노동 시장의 판 자체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신입 사원들이 밤을 새워가며 배우던 기초 업무들을 이제는 AI가 단 몇 초 만에 처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업들은 더 이상 신입을 뽑아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잘 훈련된 경력직을 원하거나, AI로 그 자리를 메우려 합니다. 기업의 인력 구조가 하부가 튼튼한 ‘피라미드’에서 허리만 굵은 ‘다이아몬드’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은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보수적인 시각에서 볼 때, 이것은 심각한 위기입니다. 기업이 당장의 효율성을 위해 신입 채용을 줄인다면, 10년 뒤, 20년 뒤 이 나라의 산업을 이끌어갈 리더는 어디서 만들어진단 말입니까? ‘후배를 길러내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이자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자본 논리는 이 숭고한 전통마저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 아래 훼손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설 자리를 위협하는 이 상황을 우리는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 시니어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청년들을 향한 섣부른 훈계입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끈기가 없어,”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는 많아.” 물론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이 마주한 벽은 개인이 넘기에는 너무나 높고 단단합니다. 그들은 우리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불확실성과 싸우고 있습니다.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해도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채찍질이 아니라, 이 구조적 모순을 함께 고민해 줄 어른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 우리 자녀들이 숨 쉴 틈조차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분명 존재합니다. 기계는 계산할 수 있어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데이터는 분석할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십은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니어들이 평생을 바쳐 체득한 ‘경륜’입니다.

이제 시니어들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단순히 은퇴 후의 안락한 삶을 즐기는 것을 넘어, 사회의 어른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기업들에게는 단기적 이익보다는 인재 양성이라는 장기적 가치를 상기시켜야 합니다. 정부에게는 청년들이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직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의 혁신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과 사회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합니다.

기술 만능주의가 팽배할수록 인간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우리 시니어들이 가진 인문학적 소양, 도덕적 판단력,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진정성은 AI 시대에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청년들이 기술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파도를 탈 수 있도록, 우리 시니어가 든든한 등대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우리 세대가 마지막으로 완수해야 할 시대적 소명일 것입니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그리고 그 청년을 살리는 길에 우리 시니어들의 지혜와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사다리가 끊어졌다면, 우리 몸을 굽혀서라도 새로운 다리가 되어줍시다. 그것이 진짜 어른이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