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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ッティング(ばってぃんぐ,바팅그; 베팅; Batting; Driving Prices Down)
미국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일본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시기는 일본산 텔레비전, 자동차, 카메라 및 기타 제품이 미국으로 물밀듯이 들어와, 전통적으로 해당 분야를 장악하고 있던 미국 기업들을 압도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이처럼 미국을 침투한 일본 제품의 범람은 몇몇 미국 기업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제품도 일본에서 판매해야겠다는 인식을 갖게 했고,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야 뒤늦게 일본 시장에 진입하려 한 이 선구자들은 곧 일본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장벽과 도전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경우, 특정 제품의 유통망에 진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제조사에서 소매업체에 이르기까지 촘촘하게 얽힌 유통망은 외부인이 침투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시장을 뚫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제품의 판매 가능성이나 가격 경쟁력, 혹은 애프터서비스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오직 일본 내 제조업체, 도매상, 소매상 간에 형성된 관계망이 전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몇몇 미국 기업들은 일본의 대형 제조업체—예를 들어 마쓰시타, 도시바, 히타치 등—가 가격 책정부터 유통, 판매까지 마케팅의 전 과정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 제조업체는 자체 도매 자회사를 보유하거나, 도매상에 지분 투자 및 이사 파견을 통해 직접 통제권을 행사했습니다. 또한 소매 체인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전국 수백 개 매장과는 독점 계약이나 가맹점 형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제조업체와 유통망 간의 또 다른 결속 고리는 금융이었습니다. 이들은 도매 및 소매 단계에 물품을 180일간 위탁 판매 형식으로 제공하고, 큰 리베이트(환급금)를 지급하며, 전액 반품 가능 조건까지 부여했습니다.
외국 제조업체들이 일본의 수입업자, 도매업자, 소매 체인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을 때, 그 문들은 대부분 닫혀 있었고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 시스템은 외국 기업들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통제하기 위해 일본 제조업체들이 설계한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일본의 잠재적인 경쟁업체보다 외국 업체들에게 훨씬 더 큰 장벽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외국 업체들은 이 시스템 자체를 인식조차 하지 못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간관계나 연줄이 없었으며, 일본식으로 버티며 사업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자금력도 없거나 투자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의 이차적인 목적은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쟁 형태, 즉 ‘경쟁(batting, 바팅크)’을 회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 용어를 영어의 “bat(방망이)”에서 유래하여 사용하며, 야구 용어에서 왔습니다.
일본어로 ‘바팅그’이란, 동일한 제품군을 두고 소매상이나 도매상이 가격, 서비스 또는 각종 혜택을 통해 서로 경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자유시장 경제 옹호자들이 신성시하는 것들입니다.
일본에서 바팅에 대한 저항은 1990년과 1991년에 발생한 “버블 경제” 붕괴로 인한 참사를 겪기 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통제 불능 상태로 팽창하던 부동산 및 금융 시장이 붕괴하자, 일본의 독립 소매업체들은 제조업체가 정한 가격을 깨고 할인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한국,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수입한 저가 제품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일본의 가장 강력한 제조업체들조차 자사 제품의 광범위한 할인과 외국산 저가품과의 경쟁으로 인한 영향을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바팅을 막기 위한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외국 기업들은 기존 유통망을 통해 진입하고자 할 경우, 반드시 시장 내 ‘바팅’을 방지하기 위한 독점 계약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유명한 사건 중에 하나가 ‘도요타 자동차의 갑질’입니다. 도요타 자동차의 부품을 하청업체의 외주 가공을 통해서 조달받는 것을 관리하는 ‘외주부서’가 과도한 경영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하청업체들에게 부품단가 ‘바팅그’을 요구해서 그 ‘부품단가 인하효과’로 사업부의 목표를 달성하고 결국에는 도요타 자동차 회사의 이익을 늘리는 방법을 관행적으로 유지하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그 폐해가 심했던지 하청업체가 단합해서 ‘거부운동’을 벌인 결과 해결될 정도로 만연했었습니다.
불편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잘못된 ‘일본의 바팅그 경영방식’을 배워와서, 아직도 근절되지 않는 ‘원청업체의 하청업체 괴롭히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하청업체를 관리하는 부서는 연간 사업목표를 ‘하청업체 부품단가 절감 금액’으로 잡고, 그것을 달성하느냐를 경영성과로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직장인이 한 쪽에서는 주인 행세로, 또 한 쪽에서는 그 주인의 종노릇으로 서로 마주하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상생이 어려운 것이고, 좋은 이웃을 두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의 속마음 ‘바팅그’는 가슴 아픈 이웃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현역 시절에 있었던 지울 수 없는 과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