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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誠心(ちゅうせいしん, 추세이신; 충성심; Loyal to the Last)
일본인들은 큰 딜레마에 직면해 있습니다. 외교 문제나 국제 무역 등 외부 세계와의 모든 관계 속에서,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외부 세계에서 받아들여지기를 요구받는 방식과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즈니스나 정치 관계에 있어 일본인의 고유한 성격과 행동방식을 구성하는 주요한 문화적 특성들은 외국인과의 관계에서 오해를 낳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가치관과 기대의 미묘한 차이에서 비롯되며, 필연적으로 마찰을 일으키고, 종종 어떤 형태로든 갈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 중 하나가 바로 ‘충성심’(忠誠心, ちゅうせいしん, 추세이신) 개념과 그 실천 방식입니다. 이 개념은 영어로는 “궁극적 충성(ultimate loyalty)”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며, 일본에서는 학창 시절 친구나 직장의 동료들, 운동 팀 등에서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 대해 극도로 높은 수준의 충성심을 보여줄 것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요구는 서양인의 시각으로 보면 합리성의 범위를 초과할 정도입니다.
이 충성심은 단지 사회적 차원의 요구에 그치지 않고, 강한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인이라면 항상 일본인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문화적 강박이 있으며, 이 기준은 극도로 세밀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 할복(切腹)과 명예 자결
과거 사무라이 계층에서 충성심은 주군(주인)에 대한 “생사의 충성”으로 강요되었습니다. 주군이 명령하거나, 혹은 실수로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되면 할복(자결)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충성, 명예,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매우 극단적인 행위로 자리 잡았는데, 실제로는 권력자의 뜻에 맞춰 불합리한 명령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족에게까지 피해가 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20세기 이후까지도, 군국주의와 결합된 충성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집단 자결(옥쇄 작전)등이 미화되었습니다.
- 집단 내 차별과 집단괴롭힘
일본에서는 집단 충성심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집단 이기주의”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해외 유학이나 근무 후 귀국한 일본인은 “충성심이 부족하다”, “일본인답지 않다”고 의심받으며, 심한 경우 학교나 직장 등에서 따돌림(이른바 이지메)이 발생합니다. 이는 심적인 폭력과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며, 결국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출세에 큰 제약을 받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 기업 내 과도한 복종 문화
일본의 일부 대기업에서는 ‘회사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도쿄전력, 덴츠 등 대형 기업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 압박과 상사의 폭언, 괴롭힘이 문제가 되었으며, 실제로 과로와 괴롭힘에 못 이겨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다수 발생했습니다. 본인을 포함한 가족까지 ‘회사에 충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있습니다. 특히 “블랙 기업(블랙키기)” 문제는 일본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 역사적 충성심 왜곡과 집단범죄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시기,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왜곡된 집단 충성심이 결합해 난징대학살, 731부대 인체실험 등 전쟁 범죄가 자행되었습니다. 당시 군 지휘부 및 일선 병사들은 국가, 천황에 절대적 충성을 강요받았고, 상부의 비윤리적 명령에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전후에도 스스로 죄를 부인하거나, 오히려 국가에 충성했다는 논리로 면책을 주장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 극단적 배제와 인권 경시
일본 사회에서는 강한 집단 충성의 논리가 사회 약자·소수자, 고발자(내부고발자, whistleblower) 등에 대한 배척과 인권 침해로 이어집니다. 내부고발을 한 직원이 회사나 조직에서 따돌림·불이익·법적 소송을 당하는 등, 충성을 안 했다는 “집단적 응징”의 형태로 나타난 실제 사례가 다수 보고되어 있습니다.
왜곡된 충성심은 일본 사회에 ‘명예 극단적 선택’, 집단따돌림, 과도한 업무 요구 및 괴롭힘, 전쟁 범죄 동조 등 심각한 사회적 폐해로 연결되어 왔습니다.
충성이라는 미명 하에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집단 내부의 비판과 변화를 막는 병폐가 지속적으로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의 충성심 문화는 긍정적 결속력이라는 본래 목적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왜곡되고 극단화되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아왔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다국적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거의 모든 조직에서, 해외 경험이 있는 귀국자는 종종 ‘진짜 일본인’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이는 곧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일본 기업에서 근무하는 귀국자(해외근무 경험자)들이 조직의 최고 권력에 오르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이렇게 해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비(非)일본화(de-Japanized)’된 존재로 간주하고 차별하는 관행에서 벗어난 기업은 여전히 드물며, 오히려 이런 사례가 뉴스거리가 될 정도입니다.
일본 정부와 민간 모두에서 이러한 폐쇄성을 극복하고자 ‘국제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매우 미미합니다. 여전히 일본 문화는 강력하고도 전방위적인 기준점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특히 오랜 역사를 지닌 조직에서는 기존 문화에 순응하지 않는 이들을 억압하거나 제거하려는 경향이 여전히 뚜렷합니다.
1951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일본이 경제적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자, 일본의 기업가들과 관료들은 자부심에 차 있었고 외국인들과의 협업에도 협조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는, 외국인이 일본의 대기업이나 관공서와 비즈니스를 진행하고자 할 경우, 몇 개월에서 몇 년에 걸쳐 일련의 ‘충성심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으며, 그 방식은 외국인에게는 비합리적이거나 비논리적으로 느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이른바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일본 사회 전체가 현실로 되돌아왔고, 일본 은행들은 수십억 달러(수조 엔)의 자산 가치를 잃었습니다. 마쓰시타, 도시바, 히타치, 소니 같은 유명 대기업들도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거나 이익이 급감하는 상황을 겪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과 비즈니스를 하려면 일정 수준의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 방식은 과거보다 훨씬 투명하고, ‘버블 경제 붕괴’ 이전에 비해 훨씬 덜 까다롭습니다.
요즘 우리네 기업에서도 MZ세대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종종 거론합니다. 어쩌면 이 또한 일본 문화의 잔재가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할 것은 궁극적으로는 ‘회사’가 아닌 ‘고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