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前例(ゼンレイ, ぜんれい, 젠레이; 전례 ; Breaking the Molds of the Past)
일본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좌절하는 것 중 하나는 일본인들의 행동이 외국인의 논리와 상식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사업과 여러 인간 활동 분야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모순은 일본에 있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며, “세상에는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짜증을 느끼는 또 다른 부분은 정부와 기업의 관료적 태도의 경직성입니다. 일본의 기업인이나 관료들에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은 할 수 없는 일이며, 따라서 시도조차 해서는 안 된다”라는 사고방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외부인의 눈에는 이러한 태도가 마치 외국인이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현대의 발명이 아니라, 일본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성향이며, 바로 ‘前例(ゼンレイ, ぜんれい, 젠레이; 전례)’ 를 피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본 역사 대부분의 시기에서 어떤 선례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으며, 새로운 방식의 시도는 법적으로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항상 기존에 존재하던 방식만을 따르며, 세대를 거쳐 완성된 절차와 형식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 철저히 지켜진 사고방식과 실천은 일본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새로운 전례를 만드는 것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만들었습니다. 변화는 대개 지역 번(藩) 정부나 막부의 후원 아래 오랜 합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으며, 수개월, 수년, 혹은 수십 년의 논의를 통해 비로소 실행되었습니다.
1868년 막부·번 체제가 무너진 뒤 이루어진 정치·경제·사회적 대변혁조차도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변화들은 반세기에 걸쳐 토론되고 갈등을 거친 끝에 새로운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정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인의 ‘전례 회피 성향’은 1945년부터 1952년까지 이어진 연합군 점령기와, 봉건 시대의 법률을 폐지한 전후의 새로운 미국식 헌법 제정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외형적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정치나 비즈니스 분야에서 과거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전례를 만드는 일본인은 극히 드뭅니다. 정기적으로 기존의 틀을 벗어나 행동하는 이들은 예술가, 연예인, 아직 사회에 진입하기 전의 젊은이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이단아적 사업가들 정도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기업인과 관료들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는 시스템 속에 여전히 묶여 있습니다. 이는 사소한 규칙조차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아, 오히려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인들이 다른 일본인보다는 외국인에게 새로운 전례를 허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일본에서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외국인들에게 삶을 조금은 더 견딜 만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아무리 외국인에게 허용하는 경우가 있다손 치더라도 쉽게 ‘전례’가 깨질까요? 일본인의 속마음을 안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