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目利き(めきき, 메키키, 눈에 좋다, Made to Please the Eye)
외국 수출업자들이 자국 제품을 일본 시장에 들여오려 하면, 반드시 각종 장벽이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를 마주하게 됩니다. 정부 규제, 현지 생산자의 저항, 그리고 “이 제품은 일본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항의까지 다양합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부적합성’ 주장들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일본을 국제적 조롱거리로 만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때 일본의 눈(snow)은 세계 다른 지역의 눈과 달라서 외국산 스키는 일본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일본인의 장(腸)이 서양인보다 길기 때문에 특정 외국 식품은 일본인에게 맞지 않다고 했고, 일본인의 피부가 외국인과 달라서 외국 비누로는 깨끗이 씻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주장들이었음에도, 그 목적은 달성되었습니다. 즉, 외국 제품을 일본에 들여오지 못하게 막거나, 일본이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할 때까지 시간을 벌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외국 제품이 일본 시장에 들어가는 데 있어 이러한 규제나 산업계의 반대 외에도 훨씬 더 심각한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인의 문화적 반응으로 형성된 ‘目利き(めきき, 메키키, 눈에 좋다, Made to Please the Eye)’라는 개념입니다.
‘메(目)’는 ‘눈’을 뜻하고, ‘키쿠(効く)’의 명사형은 ‘효과가 있다’, ‘좋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단어가 결합된 ‘目利き(めきき, 메키키, 눈에 좋다)’는 문자 그대로 ‘눈에 좋다(good for the eye)’를 의미하며, 흠 하나 없는 완벽한 마감과 세밀한 공정을 거친 제품을 뜻합니다.
과거 한국산 셔츠와 의류를 일본에 수출하려는 시도에 참여한 선배의 경험을 회상합니다. 일본의 수입업자들은 모든 상품을 일일이 검사하며, 봉제선에 실밥이 조금이라도 남거나 라벨이 약간 삐뚤게 붙은 제품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한국 제조사나 소비자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런 ‘사소한 결함’들이 일본인에게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너무 많은 결함이 발견되어 수입 자체를 거절하거나, 고급 매장에 판매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반응은 일본인의 심리에 깊이 뿌리내린 ‘메키키 증후군(Mekiki Syndrome)’의 전형적 증상이었습니다. 일본인은 모든 물건이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지는 환경에 익숙하여, 작은 불완전함도 마치 네온사인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1980년대 말까지 일본 수입업자와 소비자들은 외국산 제품 샘플을 다이아몬드 감정하듯 철저히 검사했습니다. 단순한 셔츠나 사과, 자동차 부품조차도 지나치게 꼼꼼히 살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 ‘目利き(めきき, 메키키, 눈에 좋다, Made to Please the Eye)’ 문화만으로도 수백 가지 외국 제품이 일본 시장 진입에 실패하거나 수년간 지연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메키키’ 기준은 제품 그 자체뿐 아니라 ‘포장(package)’에도 적용됩니다. 일본 시장에서는 미국산 포장이 거의 항상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유럽산 포장은 일부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고급 소비재의 경우, 일본 측이 아예 포장을 직접 다시 제작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 버블경제가 꺼지기 시작하면서, 일부 일본 수입업자들은 중국이나 동남아산의 값싸고 품질이 낮은 상품을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1990~1991년 버블이 붕괴되자, 일본 소비자들도 점차 고가 브랜드보다 ‘가성비’를 찾기 시작했고, 이로써 ‘메키키’ 문화가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서도 다양한 결함이 있는 외국산 제품이 판매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제조업체가 일본에 수출하려면 전통적인 ‘메키키’ 기준을 충족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일본인의 눈높이에 맞는 제품은 흔히 ‘本物(혼모노, 진품, 정통품)’라 불리며, 특정 분야나 사물에 대해 비상하게 세밀하고 정통한 사람을 ‘詳しい人(くわしいひと, 쿠와시이 히토)’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눈도 이제는 일본인의 ‘눈(目)으로 감별하는 안목’을 넘어서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