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 The Quiet Advisors)
일본에는 전통적으로 ‘그림자 천황’, ‘그림자 쇼군’, ‘그림자 총리’와 같이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배후 권력자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오늘날까지도 특히 정치 분야에서 생생히 살아 있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리더는 실제로 배후 인물들의 ‘전면’일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술, 엔터테인먼트, 기업 경영 등 다른 분야에서도 이러한 ‘그림자 실력자’들은 존재합니다.
일본의 긴 봉건 시대 동안, 남성의 평균 기대수명이 45~50세였을 때는 소규모 상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상인이 약 40세 전후에 은퇴해 가업을 아들 또는 사위에게 물려주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일부 은퇴자는 간접적으로 경영에 관여했지만, 다른 이들은 취미 활동이나 문화 활동, 국내 여행에 몰두하며 더 이상 가업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현대 일본에서도 대기업의 창업자, 회장, 사장 등은 일상의 경영 실무에서 자유로워지고 특별 프로젝트나 장기 전략에 집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찍 은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급여와 복리후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본 기업에서는 회장·사장·부사장 등 고위 임원이 회사의 실수, 사고, 스캔들에 책임을 지기 위해 ‘자진 사임’하는 관습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사임 후에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 The Quiet Advisors)’, 즉 ‘선임 고문’ 직함을 부여받아 급여와 처우를 유지합니다.
이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들은 사무실, 전용 차량, 비서 등을 제공받습니다. 일부는 이름뿐인 고문으로 남아 경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지만, 또 다른 일부는 이전보다 조용한 방식이긴 하지만 회사 의사결정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며 활동을 지속합니다.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가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지는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컨대 사임 또는 조기 은퇴의 배경, 정치적 민감성, 사임 전 인기도·경영 스타일, 후임 경영진이 전임자의 경험을 얼마나 가치 있게 평가하는지 등이 영향을 미칩니다. 대부분의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는 요청이 있을 때에만 직접적인 조언을 제공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최고 경영진과 긴밀히 접촉하며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부분의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가 수행하는 핵심 역할 중 하나는 회사의 정치적·상업적 네트워크를 계속 활용하여 회사에 이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일본 기업은 오래도록 내부 인맥 중심의 폐쇄적 구조로 인해 스캔들에 취약했고, 1980~90년대에 잦은 기업 스캔들 이후에는 외부 이사를 영입하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라는 말은 회사가 특정 전문 영역의 조언을 필요로 할 때 외부 전문가에게 부여하는 ‘고문·자문’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이러한 경우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는 상당한 권위와 경력을 가진 인물이 회사 최고경영층과만 교류하는 존재입니다. 대기업은 유명 교수나 전직 관료 등을 연결망과 전문성을 이유로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로 영입합니다.
가장 바보스런 사업주는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의 능력을 등안시하고 그의 노하우를 활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재적으로는 현역 사업주보다 더 월등하지만, 현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직접적인 조언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간과합니다. 현명한 사업주는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의 오랜 경험과 수 많은 실패의 아픔을 간접 체득할 수 있는 ‘가정교사’를 아주 잘 활용합니다.
우리나라에는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을 ‘연배’라는 나이 장벽으로 인식하면서 활용도가 극히 낮은 경우를 발견합니다. 노땅에게 뭔가 지식이 밀리지 않고, 잘하고 있으니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고 뒷전으로 미루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물론 ‘相談役(そだん やく, 소단야쿠, 상담역)’이라는 이름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소위 ‘불량 직원’을 알아보는 혜안도 필요합니다. 요즘은 SNS 활동만 보아도 판단이 가능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