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
일본에는 “튀어나온 못은 망치로 맞는다”라는 오래되고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군중 속에서 두드러지는 사람, 즉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나 어떤 형태로든 독특한 존재가 되는 사람에게 강한 동조 압력이 가해진다는 일본의 전통적 관습을 경고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 다른 사람들의 결함, 약점, 혹은 평범함을 부각시키는 차이를 가진 사람에게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이는 일본의 사회·문화 체계가 계층 내부에서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행동하도록 조건화해 왔으며, 태도나 행동의 다양성을 허용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았던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수직적으로 배열된 사회 계층에 묶여 있고 자신의 지위를 자유롭게 바꿀 수 없는 사람들은, 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자기와 같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쉽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 특성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일본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어느 계층에 있든지 간에, 또래들보다 더 똑똑하고 더 유능하며 그 결과 더 성공한 사람들은, 동료나 이웃들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야 했습니다.
여성들은 계층을 막론하고 남성과의 관계에서 특히 민감한 위치에 놓여 있었습니다. 일본의 최근 역사 가운데 약 천 년, 즉 대략 900년경부터 1945년까지 여성들은 남성에게 수동적이고 복종적이 되도록 조건화되었습니다. 성차별적인 남성의 시각에서 볼 때, 이러한 문화적 조건화는 일본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적 미덕의 전형’으로 만들었으며, 초기 서구 남성 방문자들에게는 매우 매혹적인 특성으로 비쳐졌습니다.
여성에게 가해진 ‘눌러두기’가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렀던 반면, 모든 일본인은 상급자 앞에서나 일반 대중을 대할 때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 즉 ‘온순함’이나 ‘유순함’을 유지하도록 조건화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일본인들은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를 자신들의 성품 가운데 가장 칭송할 만한 덕목 중 하나로 여겼으며,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는 단순한 ‘착함’이나 ‘소극성’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개념은 집단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덕목에 가깝습니다. 튀지 않고, 위계에 순응하며, 공개적으로 갈등을 만들지 않는 태도는 일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안전과 지속성을 보장하는 행동 양식이었습니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은 일본 문화 코드들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ㆍ튀어나온 못은 망치로 맞는다”는 집단 동조 압력
ㆍ위계 질서 속 조화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사고방식
ㆍ개인의 능력이나 성공을 과시하지 않는 태도
ㆍ외견상 온순함을 유지하되, 내면의 판단이나 감정은 드러내지 않는 이중 구조
따라서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라는 부제는 도덕적 권고라기보다, 일본 사회에서 실제로 작동해 온 생존 원리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온순함은 미덕이면서 동시에 방패였고, 공개적 저항보다 장기적 생존을 택한 집단 문화의 결과였습니다.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는 상급자 앞에서나 공적인 장면에서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드러내지 않고, 갈등을 표면화하지 않으며, 집단의 조화와 위계를 자극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 중심의 일본 조직 문화는, 한국 조직 문화와 비교할 때 여러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중요한 차이를 보입니다. 두 사회 모두 유교적 전통과 집단 중심적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연공서열과 위계 질서가 조직 운영의 기본 틀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유사합니다. 그러나 그 위계가 작동하는 방식과 개인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상당히 다릅니다.
일본 조직에서 위계는 대체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여집니다. 상급자는 자신의 권위를 직접적으로 행사하기보다는 암묵적인 기대와 분위기를 통해 방향을 제시하며, 하급자는 이를 말없이 해석하고 자발적으로 따르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순수함, The Meek Survive)’는 상급자에게 순응하는 모습을 유지함으로써 조직 내 긴장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신뢰를 축적하는 역할을 합니다. 공개적인 반대나 직설적인 문제 제기는 조직의 조화를 깨는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로 여겨져 왔습니다.
반면 한국 조직에서는 위계가 질서라기보다는 보다 권력적 구조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상급자의 지시는 비교적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전달되며, 하급자는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복종하는 태도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들어 회의나 업무 과정에서 이견 제시가 허용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상사의 평가와 인사권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어, 의견 표명에는 일정한 위험 부담이 따릅니다. 이로 인해 한국 조직에서는 단순한 순응보다는 성과와 적극성의 가시적 표현이 생존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두 문화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일본 조직에서는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 자체를 실패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는 갈등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를 흡수하고 무마하는 기능을 하며, 불만이나 반대는 침묵, 지연, 비공식적 경로, 혹은 인사 이동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조직 외부에서는 평온해 보이지만, 한 번 신뢰에서 벗어나거나 배제되면 회복이 매우 어렵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에 비해 한국 조직에서는 갈등이 비교적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업무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때로는 격한 언쟁이나 보고 라인 간의 마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상급자의 개입을 통해 일정 시점에서 봉합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후 관계가 완전히 원만해지지는 않더라도 협업 자체는 지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과정은 시끄럽지만, 일정 수준의 회복 가능성이 열려 있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드러내는 방식에서도 차이는 분명합니다. 일본 조직에서는 능력을 스스로 과시하는 행위가 오히려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역량은 직접적인 자기 주장보다는, 주변의 평가와 추천,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평판을 통해 인정받는 것이 이상적인 경로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는 능력을 감추는 외피로 기능하며, 조직과의 마찰을 피하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합니다.
반면 한국 조직에서는 능력이 드러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고, 발표, 수치화된 성과 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며, 침묵이나 과도한 겸손은 때로 의욕 부족이나 무능으로 오해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식 Sunao-sa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한국 조직에서는 개인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패와 책임에 대한 인식 역시 다르게 작동합니다. 일본 조직에서는 실패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집단 전체의 문제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으며, 공개적인 책임 추궁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승진 정체, 보이지 않는 좌천, 장기적인 불이익과 같은 형태로 책임이 누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 조직에서는 실패의 책임이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귀속되는 경우가 많고, 공개적인 질책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다만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다른 성과를 통해 만회할 수 있는 여지는 상대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최근 들어 두 나라 모두 조직 문화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글로벌 기업이나 IT·스타트업을 중심으로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의 절대적 위상이 다소 약화되고, 개인의 발언권과 자율성이 확대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대기업이나 관료 조직에서는 여전히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가 중요한 안전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젊은 세대의 유입으로 수평적 소통과 위계 완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평가와 보상 구조는 여전히 위계적 성격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素直さ(すなおさ, 수나오사, 고분고분함, The Meek Survive)’는 일본 사회에서 ‘착한 성품’을 의미하기보다는, 집단 속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선택된 고도의 문화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은 일본 조직에서는 안정과 지속성을 보장해 주지만, 한국 조직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에는 개인의 역량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식 적극성과 자기 표현을 일본 조직에 그대로 들이밀 경우, 조직의 조화에 균열을 일으키는 행동으로 인식될 위험이 큽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문화가 더 우월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조직에서는 조용함이 힘이 되고, 어떤 조직에서는 드러남이 힘이 되는지를 구분해 이해하는 통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한·일 조직을 오가는 개인과 리더 모두에게 필수적인 역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