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장에서 심판은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립적인 존재입니다. 선수도, 코치도, 팬도 아닌, 규칙과 공정성을 대표하는 상징이죠. 그러나 그 심판석에 여성이 서는 모습을 메이저리그에서 보는 일은 오랫동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 벽을 깬 사람이 바로 젠 파월(Jen Pawol) 심판입니다.
지난 주말, 파월 심판은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에서 주심으로 경기에 나선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첫 번째’의 타이틀을 넘어, 그녀의 발걸음은 앞으로의 변화를 예고하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10년 넘는 기다림, 그리고 준비된 도전
파월 심판의 여정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소프트볼 경기 심판으로 처음 배트를 들고 나섰습니다. 첫 경기의 심판료는 15달러(약 2만 원). 이후 대학 시절 포수로 활약하며 야구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 경험했습니다.
2015년, 메이저리그 심판 캠프에서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본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해 파월은 마이너리그 심판 아카데미 장학금을 받아 본격적인 심판의 길을 걷게 됩니다. 걸프 코스트 리그에서 시작해 십여 년간 1,200경기 이상을 소화하며 트리플A 챔피언십 경기까지 맡았습니다. 35년 만에 여성 심판이 트리플A 챔피언십 무대에 선 것이었죠.
시니어 독자라면 이 대목에서 “요즘 세상에 여성 심판 하나 나온 게 뭐 대단하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야구는 여전히 보수적인 영역이 많고, 특히 메이저리그 심판진은 진입 장벽이 매우 높습니다. 심판 한 명이 빅리그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평균 8~12년의 마이너리그 경험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리천장을 깨는 순간
트루이스트 파크에서 그녀의 이름이 호명되자 관중들은 선수에게 보내는 것과 같은 환호를 보냈습니다. 보통 심판 소개는 짧고 건조하게 끝나지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박수와 환호 속에서 파월 심판은 주심석으로 향했고, 경기가 시작되자 평정심을 유지하며 경기를 이끌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의 기회가 단순한 ‘이벤트’나 ‘화제성 기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수년간의 실력과 경험으로 자격을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경기 중에도 흔들림 없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했고, 선수와 코치진의 존중을 받았습니다.
시니어 세대가 배울 수 있는 것
파월 심판의 이야기는 단순히 ‘여성의 성공 사례’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는 나이, 성별, 출발점에 상관없이 준비된 사람에게는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이 메시지는 특히 의미가 큽니다.
첫째, 경험의 가치입니다. 파월 심판은 10년이 넘는 마이너리그 경험을 밑거름 삼아 메이저리그에 올랐습니다. 시니어 역시 젊은 시절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둘째, 꾸준함과 성실함입니다. 하루하루의 작은 성취와 노력이 결국 큰 변화를 만듭니다. 나이가 들수록 단기간의 성과보다 꾸준함이 중요해집니다.
셋째, 선입견 깨기입니다. ‘여성은 힘든 심판 일을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처럼, 시니어도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자기 한계를 먼저 허물어야 합니다.
현장에서 존중받는 힘
스포츠 세계에서 심판은 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잘한 판정보다는 실수에 더 주목받고, 경기가 잘못되면 가장 먼저 비난을 받죠. 그런데 파월 심판은 경기 전부터 선수와 코치들의 축하를 받았고, 경기 중에도 존중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그녀의 성실함과 전문성이 이미 현장에서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시니어 세대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의 인정을 받으려면 단순한 ‘경험자’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일관성 있게 노력하고 결과를 쌓아야 합니다.
변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반드시 온다
메이저리그 심판진에 여성이 합류하기까지 10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변화의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결국 변화는 왔습니다. 이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지금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멈추지 않는 한 변화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파월 심판은 인터뷰에서 “오늘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그녀가 몇 경기나 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첫 걸음은 다른 여성 심판, 그리고 다른 세대의 도전자들에게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맺으며
시니어 세대에게 젠 파월 심판의 사례는 단순한 스포츠 뉴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어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이야기이며, 준비된 자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확신을 주는 사례입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에도 아직 쓰지 않은 새로운 장이 남아 있습니다. 그 장을 어떻게 채울지는 우리의 꾸준함, 성실함, 그리고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파월 심판처럼, 언젠가 우리도 인생의 ‘빅리그’에 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