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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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둘러싼 세계에는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흥미로운 질문이 있습니다.

“똑같은 토마토, 같은 밀가루, 같은 올리브유를 사용해도 왜 이탈리아에서 먹는 음식은 유난히 맛있게 느껴지고,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그 풍미가 상대적으로 약할까?”

이는 단순히 여행자의 감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식재료의 재배 철학, 유통 구조, 조리 방식, 역사와 문화적 태도까지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개입해 형성된 ‘맛의 생태계’ 전체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칼럼에서는 그 이유를 보다 구체적 사례와 함께 탐구하며, 왜 이탈리아가 같은 서양권임에도 독보적인 미식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첫번째,  식재료 품질의 결정적 차이 — “똑같은 토마토가 아니다”

품종 선택의 철학부터 다르다

이탈리아 요리의 핵심인 토마토만 보더라도 차이가 명확합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널리 재배되는 ‘산마르자노(San Marzano)’ 토마토는 단단한 껍질과 높은 당도, 깊은 감칠맛을 가진 품종으로, 나폴리 인근의 화산토에서 자랄 때 가장 높은 풍미를 냅니다. 이 품종은 수송 내구성보다 ‘맛’이 우선되는 육종 철학이 반영된 대표적 사례입니다.

반면 독일·영국에서 대량 유통되는 토마토는 슈퍼마켓 물류 시스템을 견디도록 단단함·수명·색깔 균일성에 초점을 맞춘 품종이 주류입니다.

맛은 자연히 감소합니다.

이탈리아의 바질 또한 ‘제노베제 바질(Basilico Genovese)’처럼 잎이 크지 않지만 향 성분이 월등히 높은 품종이 널리 쓰입니다. 영국·독일 대형 마트의 바질은 ‘향은 약하되 오래 버티는’ 품종 위주라 같은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도 맛 차이가 크게 납니다.

생산 환경의 차이 — “테루아르(Terroir)의 힘”

이탈리아의 토마토가 단맛·산미·감칠맛의 균형을 갖추는 이유에는 지중해 햇빛, 해안 바람, 화산토가 있습니다.

캄파니아 지역의 화산토는 칼륨과 미네랄이 풍부해 토마토·가지·고추의 풍미를 강화합니다.

독일은 일조량이 적고 기온도 낮아 당도·향미 집중도가 떨어지는 환경이며, 영국은 비가 많고 흐린 날이 많아 고추·토마토·바질 같은 ‘태양 작물’의 완전한 풍미를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품종을 옮겨 심어도 결과물은 전혀 다르게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와인뿐 아니라 채소에도 적용되는 현지 풍토(Terroir)의 차이입니다.

유통 구조가 맛을 바꾼다

이탈리아는 여전히 지역 시장 중심의 짧은 공급망(Short Supply Chain)이 강합니다.

농장에서 수확하면 하루 이틀 안에 시장에 도착해 바로 소비됩니다.

파르마의 파르미지아노 치즈 공방, 토스카나의 올리브 농가, 시칠리아의 레몬 농장 등은 수십 년간 동일한 방식으로 생산한 재료를 지역시장에 공급합니다.

반면 영국·독일은 대형 유통 체인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 수입 농산물이 많고, 냉장·선별 과정을 오랜 시간 거칩니다.

토마토는 덜 익은 상태에서 수확해 유통 과정에서 익히는 경우가 많아 풍미가 떨어집니다.

소비자는 같은 ‘토마토’를 구매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제품입니다.

두번째. 조리 방식과 요리 철학 — “재료가 스스로 말하게 하라”

이탈리아 요리의 핵심: 단순함 속의 정교함

이탈리아 요리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잘 익은 토마토, 제철 바질, 좋은 올리브유, 약간의 마늘과 소금만으로도 훌륭한 브루스케타가 완성됩니다. 파스타 소스도 양파·당근·샐러리의 ‘소프리토(soffritto)’를 천천히 볶아 단맛을 끌어낸 후, 토마토와 함께 오래 졸여 깊이를 만들죠.

즉, 재료 자체의 향미가 뛰어나야 가능한 조리 방식입니다.

이탈리아 셰프들은 “요리의 70%는 재료가 한다”고 말합니다.

독일 요리는 전통적으로 육중하고 보수적

독일 요리는 육류·감자·양배추 중심이며, 조리 방식도 삶기·굽기·훈제로 단순합니다. 풍미의 폭은 있지만 가벼운 균형·산미·허브 향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식 조미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독일 음식도 훌륭하지만, 이탈리아 요리와 같은 ‘풍미의 순간적 폭발’보다는 ‘묵직함과 포만감’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영국 요리는 산업화의 영향이 뚜렷

영국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가정식이 크게 단순화되었습니다. 식사 준비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공식품 중심의 식문화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이 흐름은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신선 채소를 활용하는 요리는 이탈리아에 비해 덜 발달했습니다.

이러한 요리사적 전통의 차이는 오늘날 영국 셰프들이 아무리 이탈리아 요리를 모방해도 원형 그대로의 ‘풍미 구조’를 재현하기 어려운 이유가 됩니다.

세번째. 환경·문화·역사적 요인 — “맛은 사회적 경험이다”

지중해의 기후는 훌륭한 ‘맛의 촉진제’

햇볕이 강하고 건조한 지중해 기후는 허브의 정유 성분을 풍부하게 만들고, 올리브나 포도 같은 작물에 당도와 풍미의 밀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바질·오레가노·로즈마리 등 허브류의 향미는 영국·독일산과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의 수도·광역시들은 전통적으로 지역 물 공급의 석회질·미네랄 함량이 달라, 파스타의 삶아진 질감과 빵 반죽의 풍미에도 영향을 줍니다.

영국의 경수(硬水)는 파스타의 질감 형성에 불리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조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식사를 ‘하루의 중심’으로 여기는 사회

이탈리아인들은 식사를 단순한 영양 섭취로 보지 않습니다. 가족과 친구가 모여 최소 1시간 이상 식사에 집중하는 문화는 음식 경험의 질을 높입니다. 사람은 편안한 상황에서 더 풍부한 맛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 같은 음식도 장소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반면 영국·독일의 도시 노동 환경은 ‘빠른 점심, 간단한 저녁’이 일상화되었고, 이는 맛의 기대치와 경험 방식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네번째. 이탈리아의 식품 규제 — “첨가물 대신 자연”

이탈리아는 EU 내에서 식품 원료 규정이 가장 엄격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DOP(원산지 명칭 보호), IGP(지리적 표시 보호), Slow Food 프레지디아(Presidia). 이 시스템은 인공 향료 최소화, 지역 품종 보호, 전통 생산 방식 유지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기본 재료의 질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지켜주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EU 표준에서 일부 벗어나며 식품 규제 유연성이 확대되어, 향료·첨가물 허용 범위가 더 넓어졌습니다.

독일도 식품 안정성 규제는 강하지만, 전통 재배 품종 보호보다는 대량·균일 생산에 적합한 체계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맛의 차이는 문화적 총합의 결과

이탈리아 음식이 유독 뛰어난 맛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요리를 잘한다”는 식의 설명으로는 부족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재료 품종 선택 철학, 기후와 토양의 차이, 짧은 유통망,  단순하지만 정교한 조리 철학, 음식을 중시하는 사회적 태도, 전통을 지키는 제도적 시스템, 이 모든 요소가 축적된 결과입니다.

독일·영국에서도 훌륭한 셰프와 레스토랑이 많지만, 이는 ‘개별적 예외’의 성공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이탈리아는 ‘국민적 평균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합니다. 이는 문화·역사·식재료 시스템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한 구조적 우위입니다.

우리가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이탈리아 음식이 맛있다”는 감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좋은 재료를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먹으며,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는 한 사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의 식문화도 이탈리아처럼 지역 농산물의 개성·품질을 살리고, 요리의 단순함 속에서 재료가 가진 고유의 향미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식은 단순한 영양원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가 가진 철학의 집약체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른 성과를 내는 직원들과 이를 관리하는 분들에게도 참고가 되는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을 하면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