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니어 독자가 놓치면 안 될 언론 소유의 문제
기업이 언론사를 인수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건설사, 유통사, IT기업, 제약사 등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이 신문사와 방송사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사업 다각화’나 ‘언론사 경영 정상화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속내는 훨씬 더 복잡합니다. 언론은 사회의 눈과 귀이자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자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동시에 가장 두려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불리한 기사 하나가 이미지와 주가를 흔들고,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지점을 기업들은 가장 예민하게 파고듭니다.
언론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한 투자나 경영 참여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곧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손에 넣는 일이자, 필요할 때 자신을 방어할 방패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언론을 가지려는 이유, 무엇을 노리는가
기업이 언론사를 원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평판 관리입니다. 좋은 보도는 더욱 확대하고, 불리한 보도는 줄이는 것만으로도 브랜드 가치는 크게 달라집니다. 이는 소비자의 구매 결정, 투자자의 신뢰, 정책 당국과의 관계에까지 직결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정책 환경에 대한 영향력입니다. 부동산, 금융, 에너지, IT처럼 규제와 제도가 기업의 이익을 좌우하는 산업에서는 언론의 보도가 정책 환경을 형성합니다. 언론을 통해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면, 법과 제도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언론은 방패막이 역할도 합니다. 불매운동, 안전사고, 내부 비리와 같은 위기 국면에서 논점의 초점을 바꾸거나 문제의 본질을 축소하는 식으로 기업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산업 정보와 시너지를 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IT기업이 뉴스 콘텐츠를 확보하거나, 제약사가 산업 전문지를 인수하는 것은 경영 전략과 연구개발에 실질적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언론 소유는 곧 정치적 입김입니다. 선거 국면이나 정책 갈등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로비보다도 강력한 메시지 확산 도구가 됩니다.
해외에서 본 ‘언론 권력’
해외 사례는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이탈리아의 미디어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방송과 신문을 기반으로 세 차례 총리에 올랐습니다. 그의 언론은 선거 때마다 집권을 위한 선전 도구로 활용됐습니다.
미국에서는 루퍼트 머독이 폭스뉴스를 통해 보수 성향 여론을 강화하며 정치적 파급력을 행사해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억만장자 빈센트 볼로레가 방송을 인수해 극우 담론 확산의 기반을 마련했고, 인도에서는 아다니 그룹이 독립 방송 NDTV를 인수한 뒤 간판 언론인들이 줄줄이 떠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방송의 논조는 급속히 친정부적으로 바뀌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사례는 기업 소유의 언론이 곧 정치 권력의 지렛대가 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의 현실, 낯설지 않은 장면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삼성은 한때 중앙일보와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재벌 친화적 여론을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호반건설은 서울신문을 인수한 뒤 과거 자사 비판 기획기사를 조용히 삭제해 편집권 침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유진그룹이 YTN을 인수했을 때는 언론노조와 시민사회가 “공공성 훼손”을 경고하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SBS 역시 개국 당시부터 대기업 소유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상업성과 중립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안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견 건설사와 제조업체들이 지역신문과 전문지를 잇따라 사들이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역 여론의 다양성을 위협하고, 산업 전문 보도의 중립성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왜 시니어에게 중요한가
시니어 독자에게 이 문제는 단순한 언론 비평이 아닙니다. 연금 개혁, 건강보험, 장기요양, 부동산 세제, 지역 복지 같은 삶의 핵심 의제가 언론을 통해 전달됩니다. 만약 그 보도가 특정 기업이나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울어진다면, 우리는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언론의 독립성은 곧 우리의 노후 선택의 정확성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독자가 할 수 있는 일들
우리는 무기력하지 않습니다. 소유 구조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매체에서 비교해 읽어야 합니다. 기사 속 숫자와 근거가 충분한지 확인하고, 없는 경우에는 “왜 없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독립 저널리즘을 구독하거나 후원해 건강한 언론 생태계를 지켜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시민의 감시는 결국 언론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듯, 시민은 언론을 감시해야 합니다.
맺음말: 언론은 공기(公器)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입니다. 기업이 자본을 넣어 언론을 키울 수는 있지만, 그 공기를 탁하게 만들 권리는 없습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할 때 사회는 숨을 쉴 수 있고, 독자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시니어 독자 여러분, 언론은 곧 우리 삶의 나침반입니다. 그 나침반의 바늘이 누구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늘 살펴보는 것, 그것이 현명한 시민으로 남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