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04일
01-03-0800

– 독일, 복지 국가의 딜레마: 38년 전의 경고, 오늘의 현실

1988년 12월, 독일의 경제 주간지에 실린 볼프람 엥겔스(Wolfram Engels, 1933–1995)의 칼럼 「말(馬)이 반대한다(Das Pferd ist dagegen)」는 발표 당시에도 논쟁적이었지만, 3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묵직한 문제의식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글은 특정 시대의 독일 복지정책을 넘어, ‘현대 복지국가 일반’이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한계를 예리하게 해부한 비판으로 읽힙니다.

엥겔스의 문제 제기는 단순합니다. 그는 당시 독일의 복지국가를 “비싸고, 비효율적이며, 더 많은 정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체계”라고 규정했습니다. 복지국가가 ‘강제적 사회보험’과 ‘소득 재분배’라는 두 축 위에 서 있지만, ‘사회 정의’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재정적 이전이 실제로는 기대한 만큼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입니다.

그가 특히 날카롭게 짚은 대목은 복지 시스템의 복잡성과 불투명성입니다. 누진 소득세를 포함한 여러 조세 장치, 그리고 수십 개 기관이 관리하는 수백 가지 이전 지출이 얽히면서, 누가 누구를 얼마나 지원하는지, 즉 ‘순(純) 재분배 효과’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아무도 명확히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엥겔스는 이를 두고 “누구도 자신의 손이 어느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지, 그 주머니에서 얼마를 꺼내는지 알지 못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제도 설계 자체가 시민의 이해 가능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사회적 구성 요소’라는 이름으로 설계된 각종 보조금과 지원 제도가 오히려 역설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와인을 마시는 사람을 보조하고,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소형차 운전자를 지원하는 상황처럼, 성실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지고, 비효율적 선택이나 낭비적 소비를 한 사람이 오히려 이익을 보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복지가 ‘도덕적 보상’이 아니라 ‘행태 왜곡’으로 작동할 위험을 경고한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행정 비용과 낭비를 동반합니다. 엥겔스가 칼럼 제목으로 사용한 ‘말’의 비유가 바로 이를 상징합니다. 그는 미국의 한 풍자만화를 인용해, ‘가난한 사람’이라는 참새에게 갈 귀리를 중간에서 관료주의라는 말이 가로채 먹는 장면을 소개했습니다. 참새에게 직접 귀리를 주지 않고, 굳이 말에게 먹여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는 비효율적 시스템을 꼬집은 것입니다. 말이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구조 자체가 목적과 수단을 뒤바꿔 놓았기 때문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복지예산은 총 137조 4,949억원입니다. 

엥겔스는 이러한 복잡한 재분배 구조의 대안으로,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단순하고 투명한 제도, 즉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시민 배당’ 또는 보편적 이전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파레토 최적’의 사고에 따라 할당(누가 얼마나 가져야 하는가)과 분배(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분리함으로써, 복지 시스템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당시로서는 급진적으로 보였던 이 제안은, 오늘날 기본소득 논의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이 비판이 38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게 읽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오늘날의 복지 시스템 역시 여전히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행정 비용이 높으며, 실제 체감 효과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금, 건강보험, 각종 소득·의료·주거 지원 제도가 중첩된 현실 속에서 시니어 세대는 제도의 수혜자가 되는 동시에, 그 복잡성으로 인해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당사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엥겔스의 비판은 시니어 독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첫째, 복지국가에서는 ‘정보가 곧 권리’라는 점입니다. 제도가 복잡할수록, 정보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는 커집니다. 둘째, 복지는 선의만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제도 설계의 단순성과 투명성이 정의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입니다. 셋째, 복지 논의는 단순히 ‘더 많이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주느냐’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엥겔스의 글은 특정한 이념을 설파하기보다, 제도의 작동 방식을 냉정하게 점검하라고 요구합니다. 과거의 비판을 거울로 삼아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의 복지 시스템을 보다 단순하고 이해 가능한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 그것이 이 오래된 칼럼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혀야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시니어 세대의 경험과 통찰이 더해질 때, 복지는 비로소 지속 가능한 제도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