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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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5일, 여의도에서 여의도에서 근무하던 동료와 선배가 함께 만났다

1921년, 니콜라이 바빌로프(Nikolay Vavilov)가 레닌그라드(1991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변경)에 죽어가는 식물 연구소를 되살리기 위해 도착했을 때, 그곳의 보관 중이던 씨앗 종자가 배고픈 지역 주민들에 의해 약탈당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널리스트 사이먼 파킨(Simon Parkin)이 쓴 흥미진진한 책 《금단의 정원: 포위된 레닌그라드의 식물학자들과 그들의 불가능한 선택(The Forbidden Garden: The Botanists of Besieged Leningrad and Their Impossible Choice), 2024년 10월 15일 출간》에 따르면, 바빌로프와 그의 동료들은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고 살아있는 씨앗 도서관의 비전을 구축’하기로 결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보물을 보존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바빌로프는 수십 년 동안 수집을 해왔고, 소련이 된 지역의 다양한 기후와 지형에서 더 강인함과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육종할 식량 작물을 찾아 전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동료 한 명은 감자를 연구했고, 다른 동료들은 ‘빵 다음으로 중요한’ 곡물을 수집했습니다. 1930년대 말, 식물 연구소의 선반에는 수백만 개의 씨앗이 담긴 수만 개의 금속 상자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1924년에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니콜라이 바빌로프에 의해 바빌로프 연구소(Vavilov Research Institute, VRI)가 설립되고 1926년에 파블롭스크 실험국(Pavlovsk Experimental Station)이 만들어졌습니다. 세계 최초 종자은행이며 종자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파블롭스크 실험국이 보유한 약 25만 종의 표본과 6만 종자들의 90%는 다른 종자은행에는 없는 종자들로 그 가치가 굉장히 높은데, 한 예로 딸기 하나만 1,000종이 넘는 표본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시설의 과학자들은 미리 이에 대비하여 종자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파블롭스크 실험국이 소장한 표본들은 대체로 ‘밭 유전은행(Field Genebank)’의 형태로 저장되었는데 전쟁의 포화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경우 보존이 극히 어려웠습니다. 1941년의 늦은 여름에 일단의 과학자들이 더 늦기 전에 정신없이 감자를 수확하여 보관하고, 시설 내에 흩어져 있던 종자들을 최대한 안전한 곳에 집적시킨 후 각 표본을 분산 보존시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하였습니다.

과학자들은 시설 보호에 사실상 아무런 외부 지원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여름 감자를 수확할 때는 그나마 소련군에게 협조를 요청하여 트럭을 빌릴 수 있었지만, 레닌그라드 공방전이 진행되던 28개월간은 오히려 표본들이 식량으로 징발당하는 것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소비에트 연방에서 직접 대피시킨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예술 작품들과는 달리 당시 기준으로 약 40만 종에 달하는 식물 종자들 및 씨앗, 뿌리, 그리고 과일 표본들은 방치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레닌그라드 공방전이 이어지면서 굶주린 해충과 들짐승들, 시민들도 경계 대상이 되어 시설에 남아있던 과학자들과 직원들은 실험국을 최대한 요새화하였습니다.

1941년 6월, 독일군이 침공했습니다. 독일군의 끊임없는 레닌그라드 도심 포격으로 실험국의 창문들이 항상 깨져 이에 과학자들은 나무판자로 틈새를 막아서 냉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공방전이 지속되면서 자원 고갈이 심화하었고, 땔감이나 석탄이 없어서 건물은 항상 춥고 습하며 어두웠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파블롭스크 실험국 시설이 독일 영사관과 히틀러가 레닌그라드 점령 이후 승전 연회를 열 계획이었던 아스토리아 호텔 근처에 위치하여서 직접적인 포격의 대상이 될 일은 없었습니다.

바빌로프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은 종자와 표본은 16개의 방을 가득 채울 정도였으며 그 누구도 보관실에 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는 열쇠는 시설의 책임자 중 한 명인 루돌프 야노비치 코르돈이 금고에 보관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종자들의 상태를 확인하였는데 혹시라도 홀로 들어갔을 때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을 미리 예방한 조치였습니다.

히틀러는 레닌그라드를 싫어했습니다. 그는 볼셰비키의 요람을 완전히 파괴하고 싶었습니다. 독일군이 점점 가까워지자, 레닌그라드에 있는 리센코의 과학자가 종자 씨앗을 피신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종자 씨앗을 가지고 도망쳤습니다. 9월, 도시가 공격을 받자, 약 30명의 지도자가 없는 직원들이 연구소로 들어와 1톤이 넘는 감자 씨앗과 비슷한 양의 곡물과 콩류를 지키기 위해 경비를 서고 있었습니다. 레닌그라드는 히틀러가 의도적으로 기아를 일으키기 위해 사용한 공군 폭격으로 식량 창고가 파괴되면서 식량이 급격히 부족해졌습니다. 11월에는 빵 배급량이 강제 수용소보다 적었습니다. 연구소 직원들은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고양이를 모두 잡아먹은 후 나타난 수천 마리의 쥐로부터 창고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웠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틈새는 벽돌로 막았습니다.

겨울이 지속되면서 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갔고, 감자 종자는 냉해로 인해 얼어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시설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박스, 종이, 부서진 건물의 잔해 등 태울 수 있는 모든 걸 태워서 감자를 비롯한 종자들을 보호했고 굶주린 시민들이 시설을 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24시간 불침번을 돌아가면서 저장고를 지켜냈습니다. 추운 날씨는 종자 보관에는 문제를 일으켰으나 라도가 호수가 얼어붙으며 생긴 ‘생명의 길’을 통해 우랄산맥에 있는 저장고로 표본들을 대피시키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우랄산맥으로 건너간 표본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되었으며 전후 다시 파블롭스크 실험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동장군과 함께 찾아온 손님은 죽음이었습니다. 굶어 죽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지방을 연료로 사용하고 근육 조직을 연료로 사용합니다. 장기가 기능을 멈추기 시작하고, 다리가 부어오르고,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숨을 멈추고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나치 독일과 핀란드에 포위된 도시에서는 이미 수만 명이 아사하고 있었으며 실험국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굶주린 대중들이 실험국 근처를 서성였고, 굶주리고 버려진 동물들은 언제든 실험국 안에 침투할 수 있었습니다. 실험국의 과학자들은 수많은 종자를 갖고 있어 이들을 먹었다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기꺼이 죽음을 택했습니다.

1942년 1월 땅콩 전문가였던 알렉산드르 슈킨이 자신의 책상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의학 식물 담당이었던 게오르기 크리에르, 벼 품종 담당이던 드미트리 이바노프, 귀리 종자를 책임지던 리디야 로디나도 이어서 아사했습니다. 드미트리 이바노프의 경우 자신이 주머니를 하나라도 잘못 건드리면 조국의 농업에 영구적 손실이 올 것으로 생각해 자신의 방에 있던 벼 품종이 담겨 있는 수천에 달하는 주머니들을 굶어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건드리지 않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앞서 나온 덩이줄기 담당이던 아브라함 카메라즈도 결국 굶어 죽었습니다. 이 밖에도 M. 스테헤글로프, G. 코발렙스키,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레온티옙스키, 아니시야 이바노바 말리기나, A. 코르준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졌으며 이들 모두가 자신들이 지키던 종자에 손대기를 거부하고 고통과 싸우다가 죽음을 택했습니다.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죽는 순간까지 버틴 그들은 분명 영웅입니다.

해빙이 오고 길에서 시신이 수거된 후, 연구소 직원들은 경작할 수 있는 모든 공간에 정원을 조성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라일락은 당근과 비트 뿌리로 대체되었습니다. 공원에는 양배추가 심어졌고, 녹색 허브는 비타민을 위해 채취되었습니다. 겨울 동안 저장해 두었던 감자 씨앗을 심어야 했기 때문에, 정원사들은 껍질에 덮여 있는 씨앗을 여러 번 수거해야 했습니다.

친위대 장교이자 식물학자인 하인츠 브뤼허는 수년간 바빌로프의 연구를 지켜봤습니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수집한 ‘원시적 변종’이 ‘아리아의 물리학’에 부합하는 ‘국가 생물학’의 궁극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943년, 독일군이 서쪽으로 후퇴하는 동안 브뤼허의 특공대는 너무 늦기 전에 씨앗을 확보하기 위해 동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금단의 정원》의 저자 파킨 씨는 이를 ‘국가가 조직한 최초의 생물 해적 행위’라고 부릅니다.

러시아의 식물학자들은 자신들과 실종된 소장님이 잊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빌로프는 용불용설과 밀식 농법을 주장하며 소련의 높으신 분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라이벌 트로핌 리센코에게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고, 1940년 10월 6일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숙청당했습니다. 1941년 7월에 사형 선고까지 받았고 과학자들이 탄원하여 1942년에 20년형으로 감형되었지만 1943년 1월 26일 향년 56세로 사라토프 감옥에서 폐렴으로 옥사했습니다. 당대 소련 최고의 유전학자가 정치적 모략으로 사라진 셈입니다. 바빌로프는 훗날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면서 복권되었습니다.

1944년 1월, 레닌그라드의 포위가 풀릴 때까지 실험국에서 종자를 지키며 죽어간 사람들은 8명부터 30명까지 출처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지켜낸 종자들은 전쟁 후 세계의 채소와 과일의 품종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진보의 추구를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가?” “먹거나, 아니면 굶어 죽느냐?” 식물 연구소 생존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직면한 도덕적, 필멸적 딜레마는 … 전혀 딜레마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바빌로프와 그 동료들의 목표는 ‘인류의 기근을 종식할 수 있는 작물을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존자 중 한 사람은 “기근이 닥쳤을 때, 수집한 작물을 먹지 않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작물을 먹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 작물은 여러분의 삶과 동료들의 삶의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농부아사 침궐종자(農夫餓死 枕厥種子)
농사꾼은 굶어 죽더라도 종자는 머리에 베고 죽는다.

국민연금공단의 해외주식과 국내주식 투자 비중 격차가 2025년에 처음으로 20%포인트(P) 이상 벌어집니다. 국민연금이 장기 목표 수익률 달성을 위해 해외 투자를 지속해서 늘리고, 국내 투자는 줄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 일각에선 지수 하락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투자 여력이 생긴 만큼 ‘큰손’이 구원투수로 등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2024년 12월 29일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중기 자산배분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24년 말 15.4%인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2025년 말 14.9%로 줄인다고 합니다. 같은 기간 해외주식 비중은 33.0%에서 35.9%로 늘립니다. 두 자산 비중 격차가 2024년 17.6%P에서 2025년에 처음으로 20%P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국민연금의 국내·해외 주식 비중이 벌어지는 건 수년 전부터 기금운용 정책의 방향성을 ‘해외 투자 강화를 통한 수익률 극대화’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 기금은 2024년 9월 말 기준 1,146조 원에 달하지만, 이 돈은 불과 30년 후인 2054년이면 사라집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연금 수령자가 훨씬 많아지는 인구 구조 변화 탓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인구 구조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국민연금을 설계한 재앙이 닥치는 것입니다.

이에 국민연금은 기대수익률이 국내보다 좋은 해외 시장으로 적극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2024년만 하더라도 1~9월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수익률은 0.46%인데 반해 해외주식 수익률은 21.35%에 달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P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기를 6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더 높은 기대수익률을 바라보고 국민연금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해외 투자 비중은 2023년 51.6%였는데, 이 비중을 오는 2028년 60%까지 확대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최근 국내 증시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시장에선 국민연금과 같은 큰손이 소방수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2023년을 2655.28로 마친 코스피 지수는 2024년 12월 27일 종가 기준 2404.77로 9.43% 주저앉았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 나스닥 종합지수와 S&P500지수가 30%가량 치솟은 점을 고려하면 국내 투자자로선 허탈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시장 일각에선 코스피 지수가 연초 대비 10% 가까이 떨어진 그 덕에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더 담을 여력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2024년 9월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1,146조 원)에서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은 12.7%(145조7,660억 원)입니다. 지수가 현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2025년 목표 비중인 14.9%와 비교하면 2.2%P만큼의 투자 여유가 생긴 셈입니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시장 환경에 따른 자산 배분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의 경우 ±5% 범위에서 목표 비중 초과·미달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까지 고려하면 이론적으로는 국민연금이 지금보다 국내 주식 비중을 7.2%P 더 늘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시장 분위기가 나빠지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민연금이 한국 주식 비중을 늘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모 의원은 소셜미디어(SNS)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환율 방어를 위한 긴급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국민연금이 해외 부분의 수익 일부를 실현해 국내에 투자한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적었습니다.

코스피 지수가 3300까지 올랐던 2021년 4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은 20%에 달했습니다. 국민연금으로선 차익 실현 타이밍이었지만 시위대까지 찾아와 “팔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당시 정부도 여론에 떠밀려 매도를 막았습니다. 이후 지수가 급락하면서 국민연금은 대규모 손실을 봤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주식시장에 오래된 격언이 있습니다. ‘떨어지는 칼을 잡으려 하지 마라. 그 칼을 잡으면 손 다친다.’ 국민연금 개편에 손도 못 올려놓은 상태에서, 전 국민의 은퇴 후 생활을 맡아야 할 종자 씨앗에 손을 대려는 검은 손길이 있다면, 이를 적극 차단해야 합니다.

앞서 베고 굶어 죽을 지라도 종자 씨앗은 먹지 않는다는 연구원과 농사꾼의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허울 좋은 선전에 풍족하지도 않은 전 국민의 은퇴 자금인 국민연금 종자 씨앗을 건드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종자 씨앗에 절대로 손대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종자 씨앗에 손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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