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꽤 지난 일이지만, 이 얘기는 꼭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하버드대학 도서관 명훈 30’이라는 진실 찾기입니다. 이 주옥같은 30훈은 SNS를 통해 처음 접하고 참 잘 만들어진 요약 문장에 감탄했습니다. 때는 두 아이가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우리 두 부모의 잔소리보다는 권위 있고 정리된 문장은 훈육하기에 딱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분 저분을 통해서 저에게 전달된 ‘하버드대학 도서관 명훈 30’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졌고, 그중에는 번역이 잘못되거나, 오탈자가 있는 것을 찾을 정도로 일반화되었고, 결국에는 너무 많이 보내주셔서 불편함이 늘어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고 함축된 문장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늘 끼고 살던 업무 다이어리에 꼼꼼히 적어놓고 저의 지난 시간을 반성하는 도구로도 사용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미국 여행길에 들어섰을 때, ‘하버드대학 도서관 명훈 30’을 보려고 직접 하버드대학에 가 보겠다는 생각은 너무 당연한 귀결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버드대학 교정에 들어선 순간,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학업의 장소인데, 한갓 여행객이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다는 상황이었습니다. 입학 실력이 없었으니, 관광으로나마 명문대학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관광객은 당연 첫 번째로 인증샷을 날리는 것이고, 유명인 동상의 구두에 손을 올려놓고 행운을 얻어오는 것이지만, 저는 좀 더 깊이 들어가 ‘하버드 명훈 30’을 사진기에 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아이들 학업이 돌이킬 수 없는 학령에 이르렀기에 장차 생겨날 손자 손녀에게 영감을 불어넣자는 심사가 포함되었습니다.
제 여행 수첩에는 삐뚤빼뚤 급하게 옮겨 적은 주옥같은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옮겨적은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자는 심사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마치 어려운 숙제를 밤새 해서 막 수업이 시작하면서 ‘숙제 책상에 올려놓으세요!’ 하시는 선생님의 지시를 받는 순간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마 익숙한 문장일 것입니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갈망하던 내일이다.”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 몰라도, 성공은 성적순이다.” 등등 무려 30개나 됩니다.
인증샷 장소를 향해 모두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저는 우선순위를 바꾸어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저는 중앙도서관 하나가 무지하게 큰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급히 핸드폰을 들고 도서관을 찾는 구글링을 시도했습니다. 하버드(Harvard)에는 모두 73개의 도서관이 있답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은 1638년에 설립되었다네요. 우리나라 역사의 같은 시간으로 비추어보면 조선의 인조 왕이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남한산성에서 항복하고, ‘세 번 절하며 때마다 머리를 땅에 찧도록 하는 굴욕적인 의식’을 했던 바로 다음 해로 조선의 사대부와 지식인들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공황과 충격을 주었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그 시기와 맞물립니다.
마침, 누군가 젊은 엄마 여행객이 제가 가진 같은 궁금증을 가이드에게 물었습니다. “’도서관 명훈 30’이 있는 곳이 어디죠?” 그러자 산만하던 여행객들 시선이 모두 가이드에게 꽂혔습니다. 일심동체로 행동을 단결시키기는 처음인듯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에 재학 중인 유학생 가이드는 아주 난감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저는 그런 것 못 봤는데요?” 이 대답이 나오는 순간, 그간의 존경과 부러움의 시선이 의심과 실망의 눈빛으로 급선회하는 것입니다. 동행자들은 진실 찾기를 이구동성으로 “정말로 없어요???”라는 말로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저 역시 실망했습니다. 그날 현지 교환학생이던 딸과 명문사학의 경제학도 아들 그리고 경력 30년의 베테랑 은행원 아내 그리고 교직 30년 경력의 팔순 모친의 지력으로도 명훈 찾기에 실패하고 하버드를 떠났습니다.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붙어 있다는 ‘하버드 명훈 30’은 가짜였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지까지 가서 그냥 없다는 얘기만을 듣고 돌아서는 아쉬움의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난 뒤 우연히 월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Enjoy the Unavoidable Suffering)’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사서이자 교수인 로버트 단튼(Robert Darnton)이 지난 2012년 11월 15일 쓴 것입니다. 시간으로 보면 오래전에 실렸던 철 지난 기사죠. 결론적으로 다 만들어진 얘기랍니다.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는 그런 명훈(Allocution)이 걸려있지 않답니다.
그 기사에는 ‘발원지는 중국이고 중국 작가 대니 펑(丹妮·冯, Danny Fung)은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벽면 명훈《哈佛图书馆墙上的训言 (Allocutions on the Harvard University Library)》’이라는 제목의 책을 2008년에 출간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의 출판사는 북경이공대학출판사(北京理工大學出版社)라는 신인도를 업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하버드대학 도서관 벽에는 없는 명훈을 가지고 초등학교, 영어 과정 시험, 베이징 대학의 입학 면접에 널리 사용되었고, 중국 웨이보를 비롯한 인터넷에 6,700만 건이 등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상무부(商務部, Ministry of Commerce)에도 읽어보아야 할 글로 추천이 되었답니다. 이 얘기를 다시 돌려보면 지난 2012년 기사입니다. 중국에서 출발한 20훈이 한국에서 30훈으로 증폭되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 없는 진실이 우리나라에서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2015년에 《하버드 공부벌레들의 명문 30훈》이라는 제목으로 ‘젊은 세대를 위한 책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양분으로 활용될 수 있고, 훗날 읽는 이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집필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큰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잊힌 진실 공방이 다시 2023년 책으로 출간되면서 ‘진실’이 왜곡되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이 책은 다시 출판사를 바꾸어 《하버드대학 공부벌레들의 30계명》으로 ‘세 살부터 아흔 살까지 읽어야 할 21세기 스마트 잠언’이라는 부제로 같은 저자가 책을 내놓았습니다.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걸려있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명훈의 원저자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았지만, 내용은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하버드’와 직접 관련이 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하버드’라는 단어가 담은 ‘시장 창출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금 부끄러운 용기를 내면, 큰 힘을 어깨 위에 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 명칭을 놓기 싫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야, 가짜라며? 그런데 (거의)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될 정도면 사실 아냐? 미국 갔을 때 하버드 대학에 직접 가봤다는게 진실이야? 부실 확인한 것 아냐???”
“그래, ‘하버드대학 명훈’은 가짜이면 어때? ‘좋은 글’인데 뭐, 그냥 받아들여, 그리 따지면 어디 진실이 있기는 해? 인생 피곤하게 살지 마!”
다들 1점에 바들거리며 점수에 집착했었고, 자기 학력을 낮추는 겸손함을 거부하고, 사회적 경험 하나하나를 생략하지 않고, 화양연화 지위를 평생 불리기를 즐겨하면서도, 이런 ‘거짓 퍼 나르기’ 사안에 대해서는 시급히 관대함으로 덮으려는 경향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더구나 진실 찾기에 접근하면 급하게 피로도를 나타내는 현실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귀하의 인격을 평가절하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한가하신 지금은 어떤 이유를 들어 대충 지나치려고 하십니까? 보내준 사람이 믿을 만하고, 글도 주옥같이 좋으니, 다툼되기 십상이니 묻고 가자는 대충 심리가 깔려있는 것은 아닌가요?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공짜로 받았으니 무조건 수긍하지 말고, 그냥 퍼 나르지 말고, 좀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합니다.
엇그제 퇴원 직전에 받은 피검사 결과가 기준치를 넘어서 의심스러우니 ‘외래 진료’를 받으라는 통보를 받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귀찮고 지루한 대기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아 졸음까지 쏟아지며 지쳐갈 무렵 기다리는 옆방에서 의사 선생님과 환자의 공방이 생생하게 흘러나왔습니다. 간호사가 바쁜 걸음에 문을 꼭 닫지 않은 모양입니다. 전문 용어를 알지 못해 A 약과 B 약으로만 구분되는 대화였습니다.
“의사 선생님, 제 친구가 저와 똑같이 선생님께 B 약 처방을 받아 건강하게 회복되었다고 해서, 저에게도 같은 B 약을 처방해 달라는데, 왜 처방을 안 해 주시는 겁니까?”
“환자 선생님, 잘 아시다시피 A 약과 B 약이 약효는 같은 것입니다. 제가 A 약을 처방해 드리는 것은 B 약의 약효가 1이라면, A 약은 100배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약효를 가진 두 약을 동시에 처방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A 약과 B 약을 동시에 처방하면 두 약이 동일한 약효라서, B 약은 의료보험에 포함되지 않는 비보험 처리되어 약값이 비싸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A 약만 처방해 드리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 저도 박사 학위가 두 개 있는 사람입니다. 그 정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아니니 무시하지 마십시오. 돈도 있어요. 그깟 비보험이 무슨 문제입니까? B 약을 처방해 주세요!!!”
“환자 선생님, 그래도 저는 의사의 양심을 걸고 A 약만 처방합니다. 그리 아시고요. 진료 끝났습니다. 자… 간호사, 이 환자 선생님 나가시니 안내해 드려요.”
합리적 이유와 근거로 상세 설명을 통해서 설득하려는 시도와 단호한 결정으로 정리하신 의사 선생님의 노고가 졸음을 확 달아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내 봅니다. 진실은 사실 확인을 통해서 강화됩니다.